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해마다 출판인들이 바빠지는 시기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한국 기준으로 10월 5일 저녁 8시에 발표된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공식적으로 후보를 공개하지 않지만,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의 책을 한 권이라도 펴낸 출판인들은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다. 혹시 모를 수상을 대비해 이벤트 등도 미리 기획해 둔다고들 한다. 가장 권위 있는 국제 문학상이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이 상에 쏠리는 관심이 출판계에는 단비 같은 특수다.
2000년대 이후 한동안,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는 국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주요 외신에도 꾸준히 오르내리며 언젠가는 노벨문학상을 타고야 말 것처럼 기대를 모으던 시인 고은의 이름은 2018년 최영미 시인의 성추행 피해 폭로 이후 퇴색했고, 지금으로선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지금의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아시아 여성 최초로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혜순 등이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꼽히지만, 수상자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예전만 못하다.
그 이유는 어쩌면 한국인 작가가 수상할 확률이 낮아 보여서가 아닐까? 물론 과거에 비해 우리 문학도 번역 등의 기반이 탄탄해지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각종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하는 경우가 많아져 노벨문학상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 옅어진 부분도 없지 않다. 다만 이제는 노벨문학상을 거론하고 싶다면 책과 문학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부터 돌아봐야 할 때다. 우리 국민은 과연 독서에 대한 열정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정부는 국민 독서문화 증진을 위해 충분한 지원과 애정을 쏟고 있는지 말이다.
출근길 대중교통 안 독서인구의 감소는 차치하더라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젊은 층의 평균 독서 시간과 학습서에 매몰된 청소년 독서 편식은 한국 독서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편 미래 독서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에 어두운 조명을 비추고 있다. 2016년 미국의 교양지 <뉴요커>에는 ‘한국인들은 책도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을 원한다’고 비판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그 이후 무엇이 바뀌었을까.
정부 또한 지난 6월 개최한 ‘K-북 비전 선포식’을 통해 세계 3대 문학상(노벨문학상, 공쿠르상, 부커상)을 콕 집어 이를 목표로 출판 지원을 해 나가겠다는 기조를 밝혔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약 60억원 규모였던 국민 독서문화 증진 지원 예산은 내년에 통째로 사라지고, 지역서점에 대한 지원도 기존 문화활동 지원 등에서 디지털 도서물류 지원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내년부터는 750여개의 지역서점 문화 프로그램을 볼 수 없게 됐다. 물론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예산을 다듬었고, 지역서점 예산의 경우 오히려 올해보다 증액됐다고 강조하지만 현장에 있는 출판인들에게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문화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저변이 확대되고 풀뿌리 문화가 살아야 장기적으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세계적 문학상이 우리 문학의 성취를 가늠하는 유일한 지표가 돼서도 안 되겠지만, 노벨문학상이라는 열매를 추종하기 이전에 필요한 거름을 주며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일이 최우선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