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마음을 강하게 갖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평소 고난에 노출되어 있어야 근본이 강해진다. 그리고 좋은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게 된다. 인간은 ‘하는 것’으로 혁명을 이루지만, ‘안 하는 것’으로 구원받는다. <70쪽>
죽음은 삶보다 위대하지 않다. 죽음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그의 삶이다. 죽어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천만 배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위대할 필요가 없다. <80쪽>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일제히 묘한 슬픔을 안겨 준다. 다만 나는 속삭이고 싶다. 사실상 인생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고. 인생은 순간순간 한 편의 수필(隨筆)이다. 우리는 모두 시인이나 소설가나 수필가도 아닌 ‘수필인간(隨筆人間)이다. <84쪽>
꽃은 상황이 안온할 적에 피는 게 아니라 도리어 시달리게 되는 경우에 스스로 살고자 하는 몸부림 안에서 피게 되는 거라고. 창가에 두어 기온과 풍광의 부침을 겪는 난(蘭)과 꽃나무가 오히려 자주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이것이 원예(園藝)의 정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아침마다 꽃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나는 굳이 그 말을 믿고 싶다. <94쪽>
인생을 맛있는 곶감들이 주르륵 꿰어진 막대라고 상상해 보자. 그 곶감들을 이미 거의 다 빼 먹은 이가 있을 것이고, 아직 한두 개도 빼 먹지 않은 이가 있다고 할 적에, 나는 당신과 내가 후자이면서도 이만큼 잘 버티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룬 것들이 적잖은 자이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아직 좋은 일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되지 아니하였으나, 웬걸 크게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훗날 우리는 전자의 쓸쓸함을 목도하는 동시에 우리가 후자에 속하였기에 곶감 같은 것들의 유무와는 아무 상관없이 멋진 인생을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99쪽>
[정리=김혜경 기자]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이응준 지음 | 민음사 펴냄 | 352쪽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