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보다 먼저 아이를 읽으면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보다 먼저 아이를 읽으면
  • 스미레
  • 승인 2023.09.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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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열심히 내달렸다. 밤새워 준비한 것들로 독후 활동도 하고 책과 연계된 체험도 다녔다. 강연도 듣고 블로그와 책을 쥐 잡듯 뒤져 엄마표 놀이도 해줬다. 하지만 아이와 하는 일에는 많은 변수가 존재했고 내 밑천은 쉽게 드러났다. 어째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내 마음도, 아이도 비뚜름히 불편해 보였다. 욕심과 기대가 앞섰나? 내 긴장과 초조가 아이에게 전달된 걸까? 그래서 아이가 뿔이 난 걸까?

그즈음에서 블로그를 끄고 육아서를 덮었다. 계획과 모방을 걷어내고 아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는 한창 가전제품을 분해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마다 눈이 빛났다. 그 반짝이는 눈빛과 기분 좋은 자극으로 달아오른 두 볼을 최대한 많이 보고 싶었다.

그때부터일 것이다. 아이 눈빛을 읽으려고 노력했던 건. 책도 스마트폰도 정말로 다 덮고 아이 눈을 들여다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활동량과 호기심이 많은 아이에게 책 한 권 온전히 읽히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힘든 일이다. 책을 읽어준다기보다는 책으로 ‘놀아주는’ 편이 나았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아이의 책 성향이 보였다. 서너 살의 아이는 자동차나 소방관, 경찰이 나오는 책을 좋아했지만 공주 왕자 이야기나 전래동화에는 흥미가 없었다. 좋아하지 않는 것까지 억지로 읽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이거라도 봐주는 게 어디야’ 하는 고마움이 더 컸다.

어쩌면 내 좋은 친구인 책을 아이에게도 소개해 준다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서툴더라도 다정하게, 더디 가도 오래오래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 엄마가 읽어주는 책. 그런 포근한 기억을 쌓아주고 싶었다.

아무리 바빠도 ‘책 읽어달라’는 부탁은 거절하지 않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몇 번이고 기쁘게 읽어줬다. 제품 사용 설명서나 카탈로그, 등장인물 많은 아동용 학습만화도 예외는 아니다.

돌아보면 말 못 하던 시절부터 아이는 책을 통해 말을 걸어왔다.

‘엄마, 나는 자동차가 좋아요. 수를 세는 것이 재밌어요. 내가 오늘 본 것들을 다시 보고 싶어요. 그런 책을 보여줄래요?’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아이의 마음을 읽고 확인해 나갈 때마다 뿌듯했다. 정신없는 나날이지만 내가 엄마로서 무언가를 하고 있으며, 아이와 조금씩 통하고 있다는 기분에 마음이 풍요했다. 무기력 대신 활력이, 우울 대신 기쁨이 차올랐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시작한 나의 책 육아도 어느새 10년이 넘어간다. 그간 아이와 책으로 쌓은 기억 창고도 퍽 다보록해졌다. 이 기억으로 앞으로의 날들도 씩씩하게 살아내겠지. 배가 부르고 마음이 든든한 요즘이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취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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