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자고 새면
이변을 꿈꾸면서
나는 어느 날이나
무사하기를 바랬다
행복되려는 마음이
나를 여러 차례
죽음에서 구해 준 은혜를
잊지 않지만
행복도 즐거움도
무사한 그날그날 가운데
찾아지지 아니할 때
나의 생활은
꽃 진 장미넝쿨이었다
푸른 잎을 즐기기엔
나의 나이가 너무 어리고
마른 가지를 사랑키엔
더구나 마음이 앳되어
그만 인젠
살려고 무사하려던 생각이
믿기 어려워 한이 되어
몸과 마음이 상할
자리를 비워주는 운명이
애인처럼 그립다
-임화, 「자고 새면―벗이여 나는 이즈음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란 것을 생각고 있다」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를 떠올리면 파란만장이란 말이 따라옵니다. 그이만큼 삶의 곡절과 시련을 겪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임화입니다. 그는 시인, 소설가, 비평가, 영화배우, 카프 서기장, 박헌영 추종자, 월북자 등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지닌 사람입니다. 동시에 너무 많은 아니마를 소유했습니다. 본명은 임인식인데 성아(星兒), 임화(林和), 김철우(金鐵友), 쌍수대인(雙樹臺人), 청로(靑爐) 등의 필명을 썼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인격체로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우리 문학사에서 그의 위상은 독보적입니다. 오장환의 유산을 박인환이 물려받았다면 임화의 운명은 김수영이 좇아갔습니다. 오늘날 시인들이 김수영의 에피고넨이라 생각한다면 그들 시에 임화의 이야기가 한 줄기 흐르고 있습니다.
시 「자고 새면」은 1939년 <문장> 1월호에 실린 작품입니다. 부제가 길지요. ‘벗이여 나는 이즈음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란 것을 생각고 있다’고. 운명을 입에 올리니 막다른 곳에 다다른 형국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일제의 파시즘이 강화될 때입니다. 임화도 자기가 만든 카프를 해산하고 절필을 거듭할 때입니다. 단편 서사시 「우리 오빠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로 외쳤던 큰 목소리가 내면으로 잦아들고 있습니다. ‘벗’은 이제 노동자도 아니고 무산계급도 아닙니다. ‘청년’입니다. 어쩌면 젊은 날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헌사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변을 꿈꾸며’ 세상 속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삶은 ‘꽃 진 넝쿨’처럼 무사하지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상할/자리를 비워주는 운명’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청년에게 전하려는 겁니다.
그는 이 땅의 적(適)입니다. 이 세상을 어지럽히며 저항하고 싸우길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수자들을 자기 운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 「적」에서 “적이여 너는 내 최대의 교사,/사랑스러운 것! 너의 이름은 나의 적이다”라고 노래합니다. 불행도 운명이라 여기며 애인처럼 생각했던 것처럼 적이 있어 용기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합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적이었던 청새치를 ‘형제’로 여겼던 뜻과 같습니다.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했지요. 라캉은 “적이란, 그의 이야기를 당신이 들은 적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나의 승리를 위해 마련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가정된 주체’라 하기도 합니다. 적은 운명의 조건이란 말이지요. 그러니 어찌 교사며, 애인이며, 형제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적은 수많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