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은 독서가 곧 선진국의 경쟁력이라는 일관된 신념하에 사회 각계의 명사들과 함께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여기에 최근 종교계의 대표적인 인사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그 첫 시작으로, 다독가로 널리 알려진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만나 종교와 독서의 관계, 한국의 독서 문화, 독서율 하락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감리회관에서 이철 감독회장을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인이 아니면 감리회라는 교단이나 감독회장이라는 직책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감리회는 영국에서 성령 운동을 통해 시작된 개신교의 한 교단으로, 성경 기본 진리에 대해서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포용적인 편입니다. 또 교육과 의료, 여성‧아동 복지 등의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구세군도 감리교 운동에서 파생된 것이죠. 한국에는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장로교의 언더우드 선교사와 함께 입국하면서 최초로 들어왔습니다. 최초의 대학교였던 배재대학교가 감리교에서 시작됐고,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인 태화복지재단도 감리교 재단입니다. 감리교 감독회장은 타 교단에서 ‘총회장, 대주교’ 등으로 부르는 직책입니다. 저는 2020년 10월에 임기를 시작해 내년 10월까지 4년 임기 중입니다.”
Q. 감독회장으로 취임하신 이후 감리회는 최초 목사 안수 120주년 기념 도서인 『한국교회 큰 머슴들』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역사에서 교회의 역할을 빼놓을 수가 없어요. 나라가 다시 일어나는 건 그 원동력이 되는 인간 변화가 있어야 가능해요. 당시에 그런 변화를 일으킨 주역이 최초의 목사님들, 여자는 전도 부인들. 성경을 읽으려면 글자를 알아야 하니까 야학당을 차려서 글자를 가르쳤고,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최초의 복지관도, 병원도 다 교회에 의해 처음 생겼죠. 독립운동가들을 살리고, 해외에 나가서 독립운동을 알린 것도 선교사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업적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잊혔기 때문에 다시 발굴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Q. 독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 아버님이 목사님이신 덕분에 어려서부터 독서가 몸에 밴 거죠. 제가 54년생인데,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모든 최신 정보나 문화가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전해졌어요. 교회가 계몽 운동의 중심이던 때입니다. 그때는 교인들이 주일에 교회를 오는 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통로였다 보니, 목회자들은 책하고 멀어질 수가 없었어요.”
Q. 전자책으로도 책을 많이 보신다고 들었습니다.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가리지 않고 읽어요. 잡식성이라 책을 고를 때도 그래요. 어떤 사람은 신간만 찾는다는데, 그냥 책방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마구잡이로 골라 와요. 배고플 때 밥을 시켜 먹는 것처럼요. 독서는 재미니까요. 우리 집사람이 두 가지는 안 말려요. 책 사는 것하고 차(tea) 사는 것. 다도가 취미거든요.”
Q. 일상에 잠시 여유를 가진다는 의미에서 다도와 독서는 닮은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도 취미를 가진 지 20년이 넘었어요. 성격이 급한 편이었는데, 차를 마시면서 많이 변했어요. 성격상 무슨 일을 하면 한순간에 다 끝내려고 했었는데, 차는 끓여 놓고 금방 훌떡 못 마셔요. 어느 정도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홀짝홀짝 나눠 마셔야 하죠. 다도든 독서든 의식적으로 휴식을 해야 할 수 있는 취미예요.”
Q. ‘기독교의 역사는 책의 역사다’라는 말이 있듯이, 기독교에는 어거스틴의 『고백록』, 파스칼의 『팡세』,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같은 수많은 고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중세 음악도 처음에는 성가로부터 시작됐듯이, 과거에는 예술이 종교성과 불가분의 관계였습니다. 인간 인식이 신 중심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고전을 읽으면 인간 외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죠.”
Q. 인생의 변곡점이 된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진부한 얘기 같지만, 성경입니다. 어릴 때는 아버님이 목사인 게 싫었어요. 어디를 가도 ‘목사 아들이 그러냐’라는 소리를 듣고, 집에서도 기준이 높으니까 속에 있는 이야기도 편하게 못 하고, 손님이 오면 얼른 숨었다가 다 가신 다음에야 나와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그랬으니까요.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갇힌 삶이라고 생각했죠. ‘왜 목회를 해서 이 고생을 해야 되느냐’ 하며 원망했었어요. 그런데 자라면서 성경을 셀 수 없이 배우고, 듣고, 읽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성경을 읽다가 처음으로 신앙적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어요. 자식보다 교회가, 교인이 먼저라는 게 그렇게 불만이었는데 그래도 세상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한둘은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 가치를 이해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거죠. 벌써 내가 칠십이 다 됐으니까. 정말 평생을 바꾼 책이네요.”
Q.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는데, 유학 생활 중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를 느낀 부분이 있나요?
“1984년에 유학을 갔는데, 그때는 아직 88올림픽이 열리기 전이니까 우리나라가 아직 궁핍한 시절이었어요. 미국에 가 보니까 의료 수준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완전히 달라요.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그랬죠. 신학교 1학년 말에 교수님이 저를 부르더니, ‘너는 왜 내 이름을 안 부르냐. 여기 와서는 여기 방식을 따라야 하니까 내가 너를 아끼듯 너도 나를 존경한다면 이름으로 불러라’ 하시더군요. 제가 삼십 대 초반이고, 그분은 지금 제 나이와 비슷한 은퇴를 앞둔 시기였으니 아버지뻘이었는데 말이에요. 미국이나 유럽 문화는 평등을 중시하는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기본적인 사고 구조 자체가 수평적인 거예요. 그리고 오로지 논리와 실력으로 사람을 판단해요. 반면 우리는 출생으로 신분이 나뉘던 시절의 수직적인 구조가 아직도 남아 있고, 혈연이나 지연 등으로 자기하고 관계가 있으면 무조건 의롭고 관계가 없으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비합리적인 사고가 팽배했죠. 물론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만, 그런 사고 구조의 전환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계 속에서 대등하게 싸우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Q. 당시 독서 문화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게, 한번은 휴양지의 호텔에 갔어요. 호텔 수영장에 가 보니 사람들이 수영복 입고 전부 다 누워 책을 들고 있더군요. 우리한테 휴식이나 쉰다는 의미는 정신없이 구경하러 다니는 거잖아요. 뭐라도 더 해야 하고. 그런데 미국에서는 해변이든 휴양지든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다 그렇게 책을 읽고 있어요. 삶의 태도부터가 다르고, 독서가 그 정도로 생활화되어 있다는 얘기죠.”
Q.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성인의 53%가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러한 독서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라고 하는데, 이렇게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편리한 점도 있지만 위험성도 있어요. 검색이 되니까 책을 통째로 안 읽고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쓰는 경우가 많아졌죠. 성경을 읽을 때도, 한 절만 읽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장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교인들에게도 통독을 항상 강조해요. 지금도 저는 새벽마다 일어나서 성경을 통독하는데, 열 번을 읽어도 스무 번을 읽어도 매번 달라요. 책을 좀 여유 있게 붙들고 읽는 자세를 기를 필요가 있어요.”
Q. 미국의 신경심리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책 읽는 뇌』라는 책에서 “독서는 인류의 기적적 발명이다”라고까지 했는데, 독서하지 않는 국민이 늘어갈수록 사회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결정이 빨라지면 오류가 많아져요. 음식이 숙성된다고 하잖아요. 사람의 일도 숙성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서 단칼로 결정하고 빨리 결정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깊이 생각해서 결정해야만 오류가 줄어들어요. 저는 AI가 인간에게 답을 내려 줄 수 있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AI가 주는 답은 입력된 자료의 폭 안에서만 나오잖아요. 기술을 활용하는 건 좋지만 거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죠.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서 데이터 이상의 깊은 이해를 갖고 살아야 하고, 이 부분을 항상 갈고 닦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곳곳에서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요.”
Q. 다독가지만 직접 책을 집필하지는 않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직까지는 스스로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예전에 시도한 적은 있었어요. 90년대 초에 어린이 기독교 서적 번역 작업부터 시작해서 집필 활동을 해 보려고 생각했었는데, 문득 ‘정말 필요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세울 이름이 필요해서 책을 내려는 게 아닌가’라는 자기반성이 밀려와서 그때부터 손을 놨어요. 이름 내려고 목회자의 길을 걸어온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뭔가 뜻이 있어서 하는 건데, 내 이름을 알리는 게 목적이 되면 주객전도인 거죠.”
Q. 그만큼 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세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시겠습니까?
“우선 성경이죠. 어려서 읽은 『천로역정』도 참 좋은 책이었고, 기독교 서적 외에는 톨스토이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모두 인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에요. 요즘에는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처럼 기독교 변증학을 다룬 책을 많이 읽어요.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나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소설들도 사실은 기독교적 변증을 위해 쓴 책이에요. 그런 새로운 관점으로 책을 읽어 봐도 좋을 듯합니다.”
Q. 이 시대 종교계의 어른으로서 독서신문의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과 관련해 교계와 국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폭넓게 생각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단편적, 획일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넓은 관점을 가져라. 그래야 나라에 희망이 있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극좌나 극우를 반대해요. 이유는 딱 하나, 대화가 안 돼서예요.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만큼 서로 다른 점을 이야기하며 맞춰 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나라는 양쪽이 소통이 안 되는 상태잖아요. 문화적으로 점점 자극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면 생각의 폭이 좁아지게 돼요.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한 도구로 독서만한 게 없죠.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을 간접 경험하며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니까요. 바쁜 삶 속에서도 꾸준한 독서로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