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겸 방송인 곽정은은 한 네티즌이 “일에서의 성취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이 있냐”라고 묻자 “아뇨, 일로 해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는 “일은 그냥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고 내 재능과 내가 사는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불행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데 일 끝내고는 행복하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온라인상에서 ‘삶의 의미를 일로 찾아야 하는가?’라는 논쟁이 벌어졌다. 네티즌 대부분은 곽정은의 의견에 공감했지만 “일반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저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정론이지만 다들 그렇게 살 수 없으니까 일 이외의 것에서라도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거겠지”라며 씁쓸해했다.
곽정은의 말대로 하루에 9시간을 넘게 있는 직장에서 그저 버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인생의 3분의 1이 희미해질 것이다. 또한 내가 가진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곳은 안이 아닌 밖이므로 회사가 내 재능을 발휘할 수 없는 곳이라면 무력감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많은 네티즌이 지적했듯이 한국 사회에서 돈도 벌고 자아실현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 말을 운 좋은 극소수의 사람이 하는 이상적이고 허울 좋은 소리로 넘겨야 할까?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의 저자 강제규의 경험담은 이 논쟁에 시사점을 준다. 119안전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중 식당 이모님이 휴가를 낸 어느 날 용기를 낸 것이 시작이었다. “반장님! 저 요리사 출신입니다. 혹시 괜찮다면 점심을 제가 준비해도 되겠습니까?” 낯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는 저자,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반장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놀라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미안하지만, 또 한 번 좀 부탁해도 될까?”
그 이후로 저자는 공식적으로 센터 식당 담당이 된다. 돼지 앞다리살 수육, 놀래미회와 매운탕, 깡통햄 버섯야채볶음… 요리사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는 소방관들을 보며 뿌듯해한다. 자칫하면 단순 반복되고 지루해질 뻔했던 군대가 성취감을 주는 일터로 바뀐 것이다.
저자가 편한 사무실이 아닌 힘든 주방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그가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엔 소방관을 향한 사려 깊은 마음이 있었다. 출동하느라 밥때를 놓쳐 컵라면을 먹으려는 소방관을 위해 미리 따뜻하게 데워둔 음식을 건네니 진심이 통할 수밖에. 직원들은 저자를 ‘아들’로 여기고 ‘준 직원’으로 대우했다. 근무 마지막 날엔 간식비를 모아 송별회 열어줬다. 수많은 보조 인력이 스쳐지나갔지만 정식으론 처음이었다. “이제 제규 가면 누가 밥해!”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아, 진짜 시간 아깝다’ 놀랍게도 저자가 사회복무요원으로 첫 출근했을 때 했던 생각이다. 그러니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고 낙담하지 말고 눈 딱 감고 용기 내보자. 기회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므로.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일로 인해 도움 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더 없는 긍지를 느끼고 무엇보다 스스로 행복해질 테니. 소방관에게 기운을 북돋아준 저자의 요리처럼, 분명 당신도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특별한 한 끼를 대접하고 있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