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는 적? 사격 중지! 아군이다
에고는 적? 사격 중지! 아군이다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07.17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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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블루록> 공식 예고편 스틸컷

“상상해 봐라. 무대는 월드컵 결승, 8만 명의 엄청난 관중, 너는 그 필드에 있다. 점수는 0대 0, 후반 추가 시간, 라스트 플레이, 아군의 패스를 받고 빠져나간 너는… 골키퍼와 1대 1. 우측 6m에 아군이 1명, 패스하면 확실하게 1점 따내는 상황, 전 국민의 기대… 우승이 걸린 국면에서 망설임 없이 찰 수 있는 맛이 간 사람만 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일본 만화 『블루록』은 월드컵 우승이라는 목표 아래 300명의 고등학생을 ‘블루록’(푸른 감옥)이라는 기숙사에 모아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육성하는 만화다. 블루록을 지휘하는 코치 ‘에고 진파치’는 일본 축구에 부족한 것은 남보다 나를 우선시하는 ‘에고’라고 주장한다. 일본 축구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일본 국민성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조직력은 세계 제일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발목을 잡는다고 단언한다. “혁명적인 스트라이커는 희대의 에고이스트다. 세계 제일의 에고이스트가 되지 않으면 세계 제일의 스트라이커가 될 수 없다. 이 나라에서 나는, 그런 인간을 탄생시키고 싶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블루록 포스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블루록> 포스터

‘축구는 11명의 소중한 동료와 함께 힘을 합쳐서 싸우는 팀플레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고교 선수들에게 “축구란 스트라이커를 위해 존재하는 스포츠다. 너희 말고 다른 녀석들은 필드 위의 보조역이라고 생각해라. (중략) 자신의 골을 다른 무엇보다도 기뻐하며 그 순간을 위해 살아가라”니… 진파치의 상식 밖의 요구에 선수들은 혼란에 빠지지만, 에고에 눈 뜨도록 설계된 훈련과 경기를 거치며 점차 진화한다.

『블루록』에서 ‘에고’는 이야기의 핵심 키워드이자 캐릭터 진화의 열쇠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라이언 홀리데이의 책 『에고라는 적』에선 전혀 다른 취급을 당한다. 저자는 에고를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이라고 정의한다. 에고는 지나친 자의식, 과한 자신감, 자기중심적 야망이라는 내 안의 적이 되어 나를 향해 총을 겨눌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도가 지나치면 자신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스티브 잡스 혹은 일론 머스크쯤이라고 생각해 집 안에 있는 돈이란 돈은 다 끌어다 쓰는 ‘사업 병’에 걸린 사람, “내가 살만 빼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면서 오늘도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켜는 ‘안 긁은 복권 병’에 걸린 사람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에고는 양면적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영화 감상이 독서만큼이나 교양과 지혜를 쌓는 데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에 “책은 물 같은 거고 영화는 술 같은 거다. 책은 우리를 좋은 의미에서 차갑게 만들어 주고 영화는 좋은 의미에서 뜨겁게 만든다. 이성은 기본적으로 차가운 것이므로 교양에 관한 한 영화는 책을 영원히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라며 영화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에고라는 적』은 책이 가진 물의 속성을, 『블루록』은 영화가 가진 술의 속성을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면 냉정하고 침착한 물의 속성을 좇아야 한다. 술에 취하듯 자기 자신에 취하거나 일시적 성공에 들뜨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은 뜨거워지고 싶다.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심박수에 따른 선택을 내리고 싶다. 더 심장을 뛰게 하고 더 피가 돌게 하는 쪽으로 가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은 영화, 만화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한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 속에서 나는 비현실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주변의 시선은 달라지고… 위험한 모험을 떠나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우리가 언제나 영화와 만화를 곁에 두고 사랑하는 이유는 발칙한 상상의 세계로 초대해 엑스트라가 아닌 주연이 되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는 네가 최고랬다가 이제는 자만하지 말라니… 우리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사회의 메시지에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러니 ‘에고의 양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라는 뻔하고 이상적인 말 대신 ‘에고는 아군이다!’라고 겁 없이 외치고 싶다. 이 세상에서 영화와 만화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내가 주인공이라는 상상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팍팍할까. 에고는 내면에 있으니까 들키지 않고 너무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살짝씩 들춰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시인 이상이 그랬던가.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에고는 가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달콤한 비밀이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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