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인이 되기로 각오했다
나는 노인이 되기로 각오했다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07.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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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로스트 케어' 스틸컷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로스트 케어> 스틸컷

나는 노인이 되기로 각오했다. 모든 인간은 늙는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이를 먹는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이토록 비장하게 선언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노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이영자가 초호화 실버타운을 둘러보는 장면이 방송된 후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이영자가 방문한 실버타운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호텔 뷔페를 방불케 했고 세탁과 청소는 하우스키퍼에게 맡길 수 있었다. 침실 벽면에 응급벨이 설치돼 있어 상주하고 있는 간호사의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이영자는 “나는 이곳이 실버타운이 아니라 드림타운이라고 생각한다”며 “빠르면 6∼7년 안에 실버타운에 입주할 계획”이라고 말해 시청자의 부러움을 샀다.

이제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다. 미국의 미래학자 안네 리세 키예르는 2030년에 120세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영자처럼 실버타운에 입주한다면 걱정 없이 노후를 즐길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이영자만큼의 경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소설 『로스트 케어』는 이렇게 극과 극의 상황에 처해 있는 노인들을 보여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격차는 노인 격차야. 특히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에 안전지대인 고급 실버타운에서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하는 노인이 있는 한편 너무 무거운 개호 부담을 가족에게 주는 노인도 있어.”

『로스트 케어』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은 개호가 필요한 노인을 타깃으로 40건이 넘는 살인을 저지른다. ‘개호’는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환자 혼자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는 행위를 말한다. 그는 살인을 하면서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와 가족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때문에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는다.

“가족 개호야말로 일본에 내린 저주야. 나는 자택에서 가족을 간병하거나 수발을 들다가 노이로제에 걸린 며느리와 딸을 아주 많이 알아. 네 앞에서 이런 이야기하기 뭐하지만, 살인이나 동반자살로 발전하는 케이스도 드물지 않지.”

노인 개호 문제를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돌봄을 받는 노인, 돌보는 가족 양쪽 모두의 삶은 무너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선택한 죽음’의 문제가 떠오른다.

“요코는 지금까지 막연히 일본이 오래 사는 나라라는 게 좋은 거라고 여겼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니,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도 미웠다.”

스스로 목숨을 거둔 오스트리아 작가 장 아메리는 저서 『자유죽음』에서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며 자살 대신 ‘자유죽음’이라는 말로 대체하자고 주장했다. 이 문제작이 출간된 1976년 당시, 그의 파격적인 제안에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인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야만 하는 존재가치이자 절대가치다. 그럼에도 죽음은 구원이라는 『로스트 케어』 속 연쇄살인범의 궤변을 100% 반박하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는 건 왜일까. 인간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진리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약하다.

장 아메리는 “죽기로 각오한 당당함은 삶의 길을 열어준다”며 자살자의 마음으로 인생을 살라고 권유한다. 그에 따르면 자살자는 인간으로 누려야 할 마땅한 존엄과 자유를 치열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다. 삶의 부조리에 부딪혔을 때 그 정체를 고민하며 온몸으로 끌어안는 사람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인, 자기 손으로 사랑한 사람을 죽인 가족, 심지어 『로스트 케어』의 연쇄 살인마까지도… 그 누구보다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추구한 사람들이었다.

『로스트 케어』는 분명 픽션이지만 지금 주변의 누군가가 겪고 있는 실제 상황이자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노인이 될 각오가 되었는가? 죽는 것보다 못한 삶 속에서 존엄을 지킬 각오가 되었는가?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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