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한길사는 지난 4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인문예술공간 순화동천에서 그래픽노블 『파워 온: 평등하고 공정한 AI 시대를 위하여』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파워 온』은 인공지능과 컴퓨터과학에 녹아든 차별과 편견에서 세상을 구하려는 청소년 네 명의 이야기다. 이들은 인공지능 시스템의 실수 때문에 경찰에게 총격당한 흑인에 대한 뉴스를 우연히 본 것을 계기로 불공평한 컴퓨터과학에 맞선다.
이번 행사에는 이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진 J. 류(Jean J. Ryoo, 류진선)가 참석해 집필 이유를 발표했다. 통역은 옮긴이 김효원 번역가가 맡았다.
진 J. 류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시각 및 환경 연구학 학사 학위를,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에서 교육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와이주립대학교 마노이캠퍼스에서 교육 및 교수학 석사 학위와 함께 중·고등학교 영어 및 사회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진 J. 류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인으로서 저의 뿌리에 대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개인적인 경험이 책의 토대가 됐다고 고백했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한국계 미국인이고 가족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크리스틴의 친구 존은 성소수자, 안토니오는 히스패닉계 이혼 가정의 자녀, 테일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십 대 청소년 네 명은 다양한 소수자 집단을 대표한다. UCLA에서 다양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진 J. 류는 여러 인종, 성별, 성 정체성, 사회적 계층을 다루며 다양한 문화와 상황에 놓인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모두를 위한 컴퓨터 과학(Computer Science for All)’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컴퓨터 과학을 배우고 이와 관련된 직업을 가질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저소득 흑인, 아시아 이민자, 중남미 출신 노동자들을 위한 운동이었지만 오히려 『파워 온』의 집필 계기가 됐다. 진 J. 류는 “그러나 정작 왜 컴퓨터 과학이 중요하고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학생들에게 묻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며 “문제는 소수자들의 목소리, 관점, 세상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 AI 기술을 만드는 빅테크 기업들의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백인 남성 주류의 IT업계에서 프로그래밍된 코드에는 인종 차별주의, 성 차별주의, 장애인·성 소수자·이민자들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반영됐다. 이 책에 실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컴퓨터 과학자인 조이 부올람위니의 사례에 따르면,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이 판매하는 얼굴 인식 소프트웨어의 인공지능이 성별이나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당 프로그램이 부올람위니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도 백인 가면을 쓰고 연구를 진행해야 했다.
평등하고 공정한 AI시대를 열기 위해선 더 많은 소수자들이 IT업계에 진출하고 높은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진 J. 류는 “IT업계는 다수 집단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유해한 직장이 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이어 “IT업계에서 여성, 유색인종이 소수인 이유는 이들에게 흥미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다. 소수자들은 IT업계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왔고 이 책에 그들의 사례를 담았다. 업계에 진출하는 데 아예 실패하거나, 설령 진입하더라도 온갖 차별로 너무 힘든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이들이 소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흑인 여성의 경우에는 이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의 제목 ‘파워 온’은 ‘컴퓨터를 켠다’는 뜻이다. 동시에 ‘새로운 행동을 시작한다’라고도 읽힌다. 진 J. 류는 거대한 IT기업에 맞서기 위한 행동으로 대화와 교육을 제시했다. 그는 “만약 학교에서 모두가 컴퓨터 교육을 받을 수 있고, IT기업에 다양성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면 IT업계뿐만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인류의 기술은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기업으로 부터 주도권을 빼앗아오려면 AI가 어떻게 인종 차별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편견과 오류 속에서 탄생한 기술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에 『파워 온』 저자 진 J. 류의 이번 내한이 반갑고 시의적절하다. 쏟아지는 차별과 혐오 발언을 받아내느라 지친 우리에게 십대들의 우정과 연대로 가득한 이 책은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 실제 고등학생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이야기라니 더 희망적이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