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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섹스에서 얻는 이득이 남성과 같다고 하자. 하지만 이 경우에도 섹스의 가격은 같지 않다. 여성에게 비용이 전가될 수밖에 없는 잠재적 임신이라는 요인이 있어서다. 잠재적 임신은 생리학적일 뿐 아니라 경제학적이기까지 하다. 남성이 임신한 상대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득은 남성과 여성이 같으나 비용은 남성이 적으므로 남성이 여성보다 섹스를 더 많이 욕망한다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만약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비용은 자연히 상승한다. 여기에서 여성이 결정하는 섹스의 가격은 잠재적 임신에 대한 경제적 비용 혹은 이에 가장 가까운 것, 곧 결혼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성매매를 제외하고서 섹스에 접근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 남성은 여성과 결혼해야만 했던 것이다. <50쪽>
일반적으로 어떤 자질을 여성에게서, 다른 자질은 남성에게서 더 발달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해도 노동 세계는 부드러움이나 공감 능력 같은 여성적 자질보다 힘이나 경쟁심 같은 남성적 자질을 더 긍정적으로 보며 더 많은 보상을 부여한다. 이런 평가는 체계적이고 진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전에 사람들은 물리적인 힘이 요구되는 노동을 더 중요하다 보고,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는 CEO처럼 높은 경쟁심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그런 평가를 받는다. 왜 사람들은 야망과 경쟁심에 이토록 높은 가치를 부여할까? 더 나아가 왜 여성이 아닌 남성이 이런 자질을 지닐 때 높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일까? 남성적, 여성적 자질에 대한 평가에서 드러나는 체계적인 차이는 여남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젠더와 경제 시스템을 둘러싼 사회적 규범의 결과가 아닐까? <83쪽>
노동 소득 관점에서 자녀 출산이 여성에게 가하는 편견은 오늘날 여성과 남성 간 평균 임금 격차의 가장 큰 부분을 설명해 준다. 이는 임금 불평등이 여성 대 남성이 아니라 엄마 대 엄마가 아닌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데이터는 이러한 점을 매우 분명히 말해 준다. 여성과 남성은 거의 비슷한 임금에서 시작하고 함께 승진하지만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이런 발전이 끊긴다. <107쪽>
음식 생산에서 여성의 지배적 역할은 이들에게 사회적 지위는 물론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주었다. 하지만 축적과 함께 불평등이 나타났다. 더욱이 농업의 집약화와 노동 생산성 증가는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했고 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키웠는데, 노동력은 여성만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성은 노동력을 생산하는 역할로 길들여지고 강등되었으며 심지어 이런 역할에 전문화되기도 했다. 남성은 재산을 생산하고 소유하며, 여성은 자녀를 재생산한다. 농업의 발명이 인류의 비극적인 실수라면 여성에게는 훨씬 심각한 잘못이었다. <169쪽>
[정리=장서진 기자]
『가부장 자본주의』
폴린 그로장 지음 | 배세진 옮김 | 민음사 펴냄 | 276쪽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