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은 도서전의 ‘손님’ 아닌 ‘주인공’이 되고 싶다
장애인들은 도서전의 ‘손님’ 아닌 ‘주인공’이 되고 싶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6.17 10: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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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도서전 사인 라운지에서 열린 ‘보리수아래 감성시인들의 사인회-장애를 개성으로’ [사진=보리수아래]

이번 주말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되는 2023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NONHUMAN’이다. 주최 측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불평등, 환경, 소외 등의 문제에 주목하고자” 했다고 주제 선정의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소외’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이번 도서전에서 소외된 자들은 없었을까. 가장 먼저 장애인이 떠올랐다. 비장애인을 기본값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기본적인 권리인 이동권에서부터 크고 작은 불편을 겪으며 소외당하곤 한다. 물론 장애의 종류나 정도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경험하는 불편이 천차만별이겠지만, 부족하나마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지난 16일 오전, 도서전 사인 라운지에서 열린 ‘보리수아래 감성시인들의 사인회-장애를 개성으로’ 현장을 찾았다. 장애인 불자 모임 ‘보리수아래’에 소속된 뇌병변장애 문인 6명이 참석한 행사로, 그중 3명이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보리수아래’는 지난해 조계종 연구 공모에 선정돼 8개월에 걸쳐 전국 사찰 90여곳의 장애인 접근 편의성 현황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뇌병변장애 문인이기도 한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에게 이번 도서전의 장애인 접근 편의성은 어땠는지 물었다. 도서출판 도반의 편집주간을 겸하며 지난 5년간 도서전에 부스로 참가했다는 최 대표는 우선 “전체적으로 계단이나 턱이 없고, 휠체어로 이동하기에 불편하지 않다. 입구에는 장애인 무료 입장에 대한 안내도 되어 있다”며 호평했다. 그러면서 “어느 부스를 가든 장애인 응대가 호의적이었고, 점자책 부스(도서출판 점자)가 있는 것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즉 관람객으로서는 딱히 불편한 사항이 없다는 얘기였다. 다만, 장애 예술인의 관점에서는 크게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바로 도서전 메인 프로그램에 장애 작가들을 중점적으로 조명하는 코너가 없다는 것. 최 대표는 “물론 이번 사인회를 할 수 있게 돼서 감사하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전면에 나서는 행사는 도서전을 통틀어 이 행사 하나라는 점이 아쉽다. 우리나라 장애 예술인 창작 지원사업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도서전 기획에 있어서도 이들을 진지하게 조명하는 시도가 이루어진다면 국제적 이미지에도 좋지 않을까”라고 제언했다.

사인하고 있는 고명숙 시인 [사진=보리수아래]

이날 현장에서는 뇌병변장애인인 고명숙·김영관·성희철·윤정열·이경남·장효성 작가가 집필한 시집과 수필집 등에 사인하며 독자들을 만났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아닌지라 이미 작가들의 작품을 알고 사인을 받으러 오는 관람객보다는 사인을 받으며 작가와 인사를 나누고, 그 자리에서 작품을 처음으로 읽어 보는 관람객이 많아 보였다.

출간을 통해 ‘보리수아래’ 소속 문인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해 온 도서출판 도반의 김광호 대표는 “무엇보다 원고를 보고 출간을 결정했다. 출판사는 원고가 나쁘면 출판할 수가 없다”며 이들의 작품에 대해 “문학적 스킬은 다소 투박할지라도 진솔한 매력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들에게 꾸준히 문예지 지면을 주고 있는 조남선 계간 국제문단 발행인에게 장애 문인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묻자 “과거에 비하면 사회적 인식이나 복지 등이 크게 발전했지만, 장애 문인들은 여전히 작품 발표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이 많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찾아내 작가로서 호명하는 작업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서전은 시대적 변화에 맞게 다양성을 아우르고자 매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도서전이 적어도 휠체어를 탄 이들에게는 접근 편의성에서 ‘흠잡을 데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물일 테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장애인들은 도서전의 ‘손님’일 뿐만 아니라 ‘주인공’도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장애 예술인 지원의 전반적인 기조에 대한 목소리로도 읽을 수 있다. 요컨대 진정한 예술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해 달라는 것.

혹자는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현재 기성 문단이나 출판계의 인정을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일부 장애인 작가들처럼, 장애 여부를 떠나 글을 잘 쓰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장애 문인들이 처한 여건은 천차만별이며, 이들의 문학적 수준 역시 싸잡아 말할 수 없다. 애초에 가타부타 평가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접해 보기는 했던가?

사인하고 있는 성희철 시인 [사진=보리수아래]

다음, 다다음 도서전에서는 독자들이 더 많은 장애 문인들의 작품 세계를 본격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하며, 긴 여운이 남는 ‘보리수아래’ 소속 문인의 문장을 소개해 본다. 지난해 9월 출간된 시집 『내일 아침에 또 만나』에 수록된 시구절이다.

“밥풀을 흘리며 먹는/어설픈 숟가락질//그리고 죽을 듯이/힘든 폼으로/화장실을 기어들어 가는 나//왜 난 이런 단순한 일상들을 반복하는 것일까?//이유는 단 하나/반복할 수 없는/한 번뿐인 내 삶을 위하여”(성희철, 「반복」 中).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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