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지 않는 지도자들이 내세우는 꿈은 최악의 악몽이 될 수 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가치 있는 꿈을 꾸기 위해서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파이 이야기』로 2002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얀 마텔(59)은 지난 13일 서울 중구 주한 캐나다대사관 스코필드홀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지도자가 픽션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과거 문화에 무관심했던 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 총리에게 4년간 진중하게 책을 골라 추천하는 편지를 보낸 일로 유명하다. 이 편지들은 지난해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라는 책으로 출간됐는데,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2013년으로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라는 직설적인 제목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현재는 절판된 당시 한국어판 서문에는 얀 마텔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위대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부디 독서를 잊지 말라고 조언하는 편지가 담기기도 했다.
얀 마텔은 자만심에 찬 중년 백인 남성이었던 스티븐 하퍼도 자신이 추천한 토니 모리슨의 소설 『가장 푸른 눈』을 읽고 나서는 흑인으로, 여성으로, 아동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조금 더 공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책을 읽어라, 마라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민주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대통령이든, CEO든 지도자들에게는 ‘당신의 비전은 어디에서 나왔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독서를 안 한다면 어디서 비전을 얻을 것인가. 문학은 나와 관련 없는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얀 마텔은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소감과 앞으로의 출간 계획 등도 밝혔다.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난 얀 마텔은 캐나다와 미국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다양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하며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소설에 담아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큰 관심이 있어 가족과 함께 공식 일정보다 일주일 앞서 입국했다고 한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땠을까. 비무장지대와 속초 울산바위에도 다녀왔다는 얀 마텔은 “한국에는 처음 왔는데 굉장히 활발하고 생기 있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면서도, “최북단인 비무장지대에 가서 북한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국경을 두고 완전히 다른 두 국가가 맞닿아 있는 곳은 처음이다”라며 한국을 ‘자본주의와 비극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내년 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신작 『선 오브 노바디(Son of Nobody, 가제)』가 영미권에서 선출간된다. 트로이 전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파피루스를 연구하던 한 젊은 학자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발굴하면서 두 세계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내용이다. 왕과 귀족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일리아스와 달리 평민의 입장을 대변한다. 얀 마텔은 “오늘날 우리 세상도 돈을 많이 가진 사람만 발언권을 가진다. 탐욕이나 오해로 트로이 전쟁과 같은 어리석은 일을 계속해서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선 오브 노바디(Son of Nobody, 가제)』 출간을 준비하는 동안, 알츠하이머 병동을 배경으로 ‘기억의 손실은 곧 내러티브의 손실’이라는 주제를 다룬 실험적 소설도 집필을 완료한 상태다.

이번 내한은 주한 캐나다대사관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올해는 한국과 캐나다 수교 60주년이자 캐나다 대표 작가인 얀 마텔의 데뷔 30주년이다. 그의 책을 도맡아 출간해 온 작가정신에서는 내한을 기념해 데뷔작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과 출세작 『파이 이야기』를 묶은 특별 합본판을 펴냈다. 이 두 작품을 합본으로 펴내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얀 마텔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문에서 이 책이 “핀란드에서 인도로, 작가로서의 첫 시작인 책부터 성숙기의 책까지 저와 함께 여행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고, “대표작인 『파이 이야기』 이외에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모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고 출간 소회를 밝혔다.
한편, 얀 마텔은 14일부터 오는 18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개막식 연설과 강연, 대담 및 북토크, 사인회 등 다양한 행사에 참가한다. 16일에는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세계 작가와의 대화’ 강연도 예정돼 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