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오래인 흙이 향그러우리라.
단 한번
나는 울지도 않었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나러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야
나의 관역은
오직 님을 향하야
단 한번
기꺼운 적도 없었드란다.
슬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목놓아 울었다.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오장환, 「나의 노래」
‘내’가 ‘우리’로 바뀌는 사다리
우리 시는 “지용에게서 아름다운 어휘를 보았고 이상에게서 ‘이미지’와 ‘메타포’의 탄력성을, 백석에게서 어두운 동양적 신화를 찾았다”고 오장환 시집 『성벽』을 읽고 김기림은 말합니다(<조선일보>, 1937. 9. 18.). 그리고 오장환을 “우리 시의 전위부대의 견뢰(堅牢)한 일방의 보루”라고 덧붙입니다. 이렇게 우리 시는 짱짱한 계보를 이루었습니다. 지금 시인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전설로 남아 흐린 기억 속에서 추억할 뿐입니다. 잔챙이 쭉정이만 남았는가. 오장환을 호명하며 불꽃처럼 살았다는 말이 새삼 아깝지 않습니다.
이 시는 죽음에 앞서 가 보았던 시인의 면모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살아서는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해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않겠다고. 시는 오로지 “님을 향하야” 있다고. 종다리가 구가하는 자유를 향해 화살같이 가서 꽂히겠다고. 그런 연후에라야 새로운 삶을 향해 스스로 피어나겠다고 말합니다. 무덤에 피는 꽃이 아름다운 것은 살아온 내력이 거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벗’은 첫 시 「목욕간」에서 멸시당한 “때투성이 시골뜨기”이며, 시 「정문(旌門)」에서 목을 맨 “열아홉 소저”이고, 시 「병든 서울」에서 숨죽여 살았던 “인민들”입니다.
오장환은 러시아 시인 에세닌을 좋아해 그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소월을 사랑했습니다. 두 시인 모두 전원시인처럼 치부되지만 오장환은 그들을 ‘도회시인’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을 ‘도회생활의 패배자’로 명명합니다. 허물어져 가는 전통 사회의 위선에 분노하고 물밀 듯 밀려오는 외세와 문명의 폭압에 절망하다 결국 스스로 소멸하였기 때문입니다. 오장환도 그들을 따라 서른넷 젊은 날에 병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침없이 청춘을 불태웠습니다. 그의 시는 협소하지 않습니다. 영웅이 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더더욱 희생자라 자처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님’이라는 ‘우리’를 향해 바닥까지 내려가 생명을 끌어 올리다 소진되었습니다. 지금 시인은 사다리를 걷어차고 홀로 위대하니 오장환의 ‘나의 노래’는 그칠 줄 모릅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