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코로나 이후 침체했던 미술계에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해외 유명 작가들의 대형 전시가 국내에서 개최돼 수십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다음 달에는 반 고흐, 르누아르, 보티첼리 등 역사적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이 예정돼 있다.
오는 8월까지 진행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이런 흐름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현대 화가 중 한 명인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국내 첫 회고전으로, 지난달 개막 전부터 사전 예매로 이미 10만명이 훌쩍 넘는 관람객을 모았다.
이번 전시에 맞춰 다양한 관련 도서도 출간됐다. 책은 전시 관람 경험에 깊이를 더해 주는 도구다. 전시장에서도 작품 해설을 접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인파가 몰리는 전시에서는 작품을 감상하기에도 바쁘다. 호퍼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다음의 책들을 참고해 보자.
『호퍼 A-Z』(한길사)
2020년 스위스 바이엘러 재단의 호퍼 전시회를 기획한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인 얼프 퀴스터가 화가로서의 명성에 비해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 에드워드 호퍼의 모습을 알파벳 키워드로 정리한 책이다. 박상미 번역가는 이 키워드를 호퍼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인 ‘창문’ 같다고 평했다. ‘미국 풍경(American Landscape), 집(House), 문학(Literature), 영화(Movie), 사실주의(Realism), 그림자(Shadow)’ 등 알파벳에 맞춰 선별된 26개의 단어들이 삶의 면면을 간략하면서도 다양하게 비춘다. “말로 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한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호퍼식’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장치다.
『빈방의 빛』(한길사)
미국의 계관시인 마크 스트랜드가 호퍼의 그림 30점에 대해 쓴, 에세이와 비평의 중간쯤에 있는 책이다. “심란할 정도로 조용하고, 방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끝내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와 같은 시인의 직관적인 통찰은, 평범한 일상의 장면을 다룬 것처럼 보이는 호퍼의 작품에 현대인들이 왜 이토록 매료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추상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그림의 구성이나 빛 처리와 같은 형식적인 측면까지 섬세하게 읽어 냈다.
『에드워드 호퍼 그래픽 노블』(이유출판)
호퍼를 평전 형식으로 다룬 최초의 그래픽노블. 인터뷰나 편지 등에서 호퍼가 직접 했던 말들을 활용해 1인칭 시점으로 그의 삶을 그렸다. 미술학교 학생 시절부터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던 시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유럽 여행과 아내 조세핀과의 관계, 화가로서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압축적으로 만날 수 있다. 책에 사용된 모든 색상은 호퍼가 그림에 썼던 색이다. 전시를 보러 가기 전후로 이 책을 읽는다면 더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