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나이
잊고 싶은 나이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3.05.25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을 유독 좋아한다. 이 말은 인생사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자주 떠올린 문구여서다.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걱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매사를 애면글면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될 일은 굳이 가슴 졸이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그러고 보니 헛된 욕심을 부려놓고 그 자리에 가슴 뛸 일들만 들여놓아야 할까 보다.

그동안 코로나19 창궐 후 고금리, 고물가는 삶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것을 이기는 방편으로써, “눈물 날 정도로 혼신을 다하여 살아라”라는 알베르 카뮈의 언명을 좌우명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슴 뛰는 일에 마음의 눈을 한껏 뜨련다.

이는 요즘 연세가 지긋한 분께 문학을 지도하며 느끼는 바가 자못 커서이다. 그분은 팔순을 바라보는 할아버지다. 그러나 열정만큼은 젊은이 못지않다. 시조, 시, 수필 세 장르에 늦깎이로 문단에 입문, 문학에 대한 열정과 투지를 뜨겁게 불사르고 있다. 심적 나상(裸像)이 오롯이 드러나는 수필문학 특질 때문인가. 그분이 창작한 수필 내용을 살펴보면 삶의 궤적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젊은 시절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를 진학 못한 한을 비롯, 온갖 고생을 하며 처자식을 부양해 온 할아버지가 겪은 질곡의 삶이 수필 작품 속에 고스란히 용해돼 있어서다.

만고풍상을 경험한 할아버지다. 이젠 지난 시절 그가 겪은 역경과 고통이 삶에 초석이 돼주고 있다면 지나칠까. 이에 힘입어 지난날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는 의지로 일상을 채우는 할아버지다. 그는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심지어는 자신이 창작한 글을 대할 때마다 늘 가슴이 뛴다고 했다. 이렇듯 목표를 향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삶은 마냥 행복하다. 그는 아직은 글 쓰는 게 서투르고 미흡하지만 의외로 내용만큼은 진솔하고 매우 교시적이다.

그를 바라볼 때마다 자신이 부끄럽다. 그동안 건강 핑계를 대며 도전은커녕 체념하고 포기한 일들이 부지기수여서다. 인간이 지닌 힘은 무한하다는 것을 비로소 팔순에 이른 할아버지를 지켜보며 깨달았으니 필자 그릇이 매우 옹색했었음을 절감한다. 이제라도 마음 그릇을 키우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자 하나, 솔직히 선뜻 용기가 나진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뛰는 일은 뭐니 뭐니 해도 남녀 간 열렬한 사랑이다. 젊은 날 상대방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 쳤잖은가. 이젠 가슴을 뒤흔들 기회조차 상실한 나이다. 이게 아니어도 소소한 일에도 뛰는 가슴이 일부 남아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지난해 봄 일이다. 아보카도 씨앗 두 개를 화분에 묻어둔 채 잊고 지냈다. 어느 날 그것을 품었던 화분 속에서 씨앗 한 개가 파릇한 새싹을 틔운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아보카도 큰 것은 다 알다시피 씨앗이 마치 작은 새알만큼 실하다. 또한 단단하기 그지없다. 이런 아보카도 씨앗이어서인지 그것을 키우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어온 터였다. 하지만 그 씨앗이 비좁은 화분 안에서 새싹을 틔운 것을 보자 갑자기 생명이 지닌 경이로움과 강인함에 왠지 가슴이 절로 뛰었다. 이로 보아 필자 가슴이 정녕코 바짝 메마른 것만은 아니라면 심한 자아도취이련가.

아보카도 나무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어린 시절 일이 문득 떠올랐다. 어머니께서 노란 병아리 세 마리를 사다 줬다. 그것이 자라자 닭 우리에 가뒀다. 모이를 줄 때 일이다. 암탉이 낳은 달걀을 발견하곤 그것을 손바닥 안에 쥐어보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닭이 갓 낳은 보얀 달걀은 따끈한 온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 달걀이 필자가 키운 닭이 낳은 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병아리 시절 이불 속에서조차 품에 안고 잠을 잘 정도로 귀여워했던 닭이 아니던가. 그것이 낳은 달걀이어서인지 어린 눈엔 마냥 신비롭기만 했었다.

어린 날 기억은 나이 들수록 또렷해지는 힘을 지닌 듯하다. 이즈막에도 그때 가슴 떨림을 엊그제 일인 양 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일상에서 동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마음은 회춘의 비결이라고도 하던가. 하긴 마음이 젊으면 몸도 젊어진다는 학설로 보아 사소한 현상에도 가슴은 뛸수록 좋은 듯하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