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소년, 작가 오영수를 만나다
가출소년, 작가 오영수를 만나다
  • 관리자
  • 승인 200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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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교수의 문학회고록①

명문가의 제자가 되다.
 60년대 무렵, 서울특별시 성북구 수유리 산 298번지. 이곳은 난계 오영수 소설가의 집. 이 지상에 작은 천국이 하나 있다면 아마도 월주 선생댁이 아닌가 싶다. 이 댁은 문자 그대로 멋진 한 폭의 수채화였다고 하겠다. 수유리 쌍문 계곡의 그 댁의 주변과 풍경은 문자 그대로 당시에 보기 힘들었던 귀한 선비의 집이었다.
 수유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은 필자인 내가 「개심천」이라고 명명했다. 이 명칭은 훗날 개심천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도 됐다. 누구든 착한 오영수 영감을 만나고 나오면 나쁜 작자도 마음을 돌려 선한 마음으로 결심하리라는 유래에서 개심천(改心川)이라 작명되었다.
 선생댁은 어느 여자대학 학장의 관사 담을 쭉 끼고 왼쪽 좁은 길로 접어들면 낮은 담장 밖으로 춘향목(적송)이 비스듬이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단층 푸른 기와 지붕이었다. 대문은 나의 순수처럼 하이얀 백색 페인트 칠을 했던 강렬한 인상이었다. 초인종을 누르면 게다짝이 따그닥 따그덕 소리를 내면서 누군가 쫓아나온다.
 누구냐고 묻는 일이 없이 문을 열게되어 있다. 오숙희(장녀), 오윤(장남)이 아니면 막내딸 영아가 주로 소문(小門)의 고리를 풀었다. 이 선생님의 자녀들은 왜, 왔느냐, 누구냐 묻지를 않는게 불문율이었다. 이 댁에 무시로 출입하는 거친 청년들이 거의 소설가 지망생들이거나 선생을 흠모하는 문학청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장래 노벨상을 꿈꾸거나 적어도 동인문학상쯤은 자기 것이라고 믿는 환충(幻蟲)들이었다.

▲ 작가 오영수씨의 유묵(70년대)

 이 환충이들은 선생댁의 마당을 들어서면서 그만 기가 죽는다. 억새 우거진 숲, 아름드리 벚나무 몇 그루, 음지 숲에는 값비싼 난분(蘭盆)들이 열 지어 바람과 하늘과 주인의 기품을 빨아올려 꽃 봉우리를 개화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자주 눈에 띄었다. 도심 정원에 원두막 풍경은 문자 그대로 오영수 선생의 낙원사상이 스며있는 이상향의 귀향의식을 엿볼 수도 있었다.

 선생은 나이가 들면 고향 울주로 내려가 댓잎소리를 들으며 달을 바라보겠다하여 아호를 월주(月洲)라고 하였다고 유래를 설명하기도 했다.
 좋은 단편을 좋은 문예지에, 좋은 사람으로 좋은 글을 쓰면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선생의 소망이었고 또한 오랜 꿈이기도 했다.

 오영수 선생의 제자는 줄잡아 이백여명. 대략 60년대 무렵에 나와 함께 그 집을 드나들면서 동문수학(同門修學)했거나 찻잔을 나누었던 환충이들, 즉 꿈의 벌레들이 지금도 얼핏 얼핏 떠오른다.

 오탁번, 한용환, 강준희, 윤정규, 김용운, 홍현희, 조정래, 윤남경, 오성찬, 이계홍 형이 이름있는 문예지 추천을 희망하거나 신춘문예 당선의 꿈을 키우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자주 원고 뭉치들을 들고 찾아왔다. 그러나 난계선생은 이들의 작품에 적색 펜으로 벌겋게 개작하시곤 했다.
 이들이 작품들을 되돌려 받을 때의 그 수치심은 고개를 들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선생님은 단어 하나, 문장 한 구절 갖고 깐깐하게 지적하시곤 했다. 이렇게 까다롭고 적확한 선생의 자상한 지적은 훗날 제자들에게 독자들로부터 존귀와 영광의 자리를 마련토록 하신 것이다.
 수련, 단련, 연습, 심혈, 집중적인 선생님의 지도는 도무지 말이 없으셨다. 묵언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면 바로 적중하리라고 믿는다.
 나는 이처럼 훌륭한 작가 지망생들 곁에서 나무로 우뚝 서기보다는 숲의 일원으로서 묵묵히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아니 묵묵히 살아왔다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허사이다. 나는 작가가 된 직후부터 세상과의 不和, 독자와의 불화 속에서 살아왔다. 이는 나를 알아봐 주지 못하는데 대한 불만이었다. 이런 불만은 자학이거나 포기가 아니고 솟아오르기 위한 도전이었다.
 이 도전은 마침내 「악어새」란 장편소설로 나타났다. 이 악어새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작가에게 자기 작품의 불화, 불만이 승화되면 그것은 폭발물처럼 위력이 있다는 점을 후학에게 전하고자 한다.

인연은 이렇게
 남의 집 머슴을 가면 쌀이 두 가마니. 꼬박 3년을 살면 6가마. 이 여섯 가마가 6년 정리쌀(高利)로 따진다면 논 세마지기와 초가삼간을 지을 수 있는 것이 60년대의 사회구조였다.

 근면 검소하고 육체가 튼튼한 나에게 그 날도 아버지는 나를 구슬렸다. 「머슴 가거라. 그게 네 신상에 좋다. 무슨 문학이냐? 얼어죽을 문학은 무슨 네가 소설을 쓴다먼 소가 웃어? 내 말 알아듣지? 저 아래 양회다리 부잣집에 부탁해 놓았다. 잘 생각혀봐라...」

▲ 오영수씨가 문학지망생 이재인에게 보낸 엽서

 나무지게를 걸머지면서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훌쩍 대문을 나섰다.
 구정이 지나 머슴을 가면 꼬박 1년을 묶여 살아야 했다. 나는 머슴 갈 위인이 아니다. 글도 잘 쓰고 한문도 명심보감까지 배웠고 군내 유명한 백일장과 이승만대통령 83회 탄신 기념 글짓기 전국대회 최우수상도 받았다.
 학원지, 현대문학 애독자로서 더러더러 대중잡지 독자 투고란에 신인 작가 등단 응모작이 입선되었다. 세상에 <이재인>이란 이름이 나돌고 특히 서울신문, 경향신문 투고란에 내 성명 삼자가 고딕으로 인쇄되어 하늘이 노오랗게 보이던 나. 머슴과는 거리가 아득한 나.

 나는 무조건 가출을 결심. 이날 밤 나는 부엌 뒷문 흙벽의 대못에 걸린 마늘 석접을 떼어냈다. 부엌 바닥에 파묻은 밤구덩이를 헤쳐 알밤 닷되를 훔쳐냈다. 그것만으로 안되 광에 쌀독을 열어 계란 두 줄을 챙겼다. 새벽이 되자 첫닭 울음소리를 신호로 홍성 읍내로 내달았다.
 족히 40분 거리의 도보. 산을 넘고 마을을 지났다. 오직 교통수단은 걷는게 유일했던 시대. 나는 도둑이 되어 집의 물건들을 돈이 되는대로 훔쳐내어 드디어 홍성읍 역전에 나왔다. 서울행 기차표를 사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뒤에서 자꾸만 내 이름을 부르면서 쫓아오는 것이었다. 물론 환청이었다.

 머슴, 나의 삶에 머슴이라니. 작가, 작가가 되어 세상에 내 이름 석자로 아름다운 세상의 꿈과 이상향을 글로 써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마침내 나는 서울행 기차에 무사히 올랐다. 내 거동을 수상히 여긴 사람이 불쑥 다가왔다.

「차표 좀 보자구...」
「?」
「이거 다 어디서 훔쳤나?」
「훔치다니유?」
「나는 다 알어... 어서 바르게 이야기해. 이야기 하면 용서해줄 수도 있어...」

 그는 경찰관 같은 복장에 챙이 넓은 모자와 곤색 양복에 눈이 부리부리한 사십대 초반의 남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오늘의 공안(公安)이었다. 철도 공안원.
 나는 그의 다그침에 그만 으앙 울어버리고 이실직고했다. 나는 그 다음 다음 예산역에 강제 하차되어 예산역원에게 인계되었다. 나는 예산역에서는 내 고향 지서로 전화가 연락되었는지 역무원은 나를 풀어주었다.
 16세 나이로 심야에의 서울로의 탈출은 막을 내렸다. 집으로 호송된 나는 몽둥이찜질로 도주의 댓가를 톡톡히 받았다. 나는 사랑방에 반주검이 된 채 며칠동안을 끙끙 앓았다. 나흘이었던가? 사흘이 지나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서고에 있는 책을 꺼냈다. 『현대문학』이었다. 오영수의 「기질」이 실려있었다. 이 소설을 읽자마자 나의 손에 진땀이 났다. 옳다. 나도 이런 소설을 쓰자. 농촌을 제재로 한 이 소설. 이 소설이 나를 구원해줄 것 같았다.
 옳지, 이 작가에게 편지를 쓰자. 그러면 답장을 해주시겠지? 그 날 나는 오영수선생의 주소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종로구 연건동 193. 현대문학사가 바로 그 분이 근무하는 근무처였다. 이 근무처로 나는 정성껏 선생님의 글을 좋아한다는 것, 내가 선생의 제자 지망생이 되고 싶다는 것, 셋째로 나의 소설을 좀 보시어 지적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 나흘 후. 참깨꽃이 피던 여름날 왕매미 소리가 진동하던 때였다. 빨강색 자전거를 탄 집배원 아저씨가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 받고 보니 오영수선생이 보낸 답신이었다. 현대문학사 주소가 찍힌 명조체 활자를 본 나는 그만 두 손이 와들와들 떨렸다.

 세상 태어나서 작가의 답신을 받다니...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눈 아이 흐릿한 가운데 그 마디마디의 격려의 내용을 몇 번씩 읽었다. 이러므로 나는 오영수선생의 말째 제자 그 거대한 숲의 일원으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 이재인(경기대 국문학과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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