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면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국내 1호 기록학자이자 현 국가기록관리제도의 틀을 만든 김익한 한국국가기록연구원장의 말이다. 대학교 시절 ‘기록’에 매료된 김 연구원장은 이후 25년간 대학과 정부, 사회에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썼고, 현재는 22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김교수의 세 가지’와 교육 프로그램인 ‘아이캔유튜브대학’ 등을 운영하며 대중들에게 기록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기록의 거인’인 그는 최근 출간한 책 『거인의 노트』(다산북스)에서 “비록 지금의 내가 난쟁이일지라도 매일의 기록이 쌓이면 우리는 그 위에서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며 일상 속에서 일어난 사건과 생각, 독서, 대화 등을 숨 쉬듯 기록하라고 권한다. “기록만 잘할 수 있다면 생활과 학업, 일, 관계가 좀 더 분명해지고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이란, 문제 해결 노하우와 같은 지혜를 도출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지식들을 연결하고 정리하는 도구다. 핵심은 머릿속에서 기억을 끌어내 현재 상황에 맞는 나만의 의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천재는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에디슨의 명언을 저자는 “99퍼센트 노력하면 1퍼센트의 영감도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전 1만4,000쪽에 이르는 노트를 남겼다고 한다. 아이작 뉴턴도 수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그의 편지와 원고, 메모는 201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책에서는 “온라인 쇼핑몰은 좋은 상품을 많이 올리면 그중에서 히트 상품이 나올 확률이 커진다. 이것을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그 우연조차 양의 집적으로 만들어진다”라며 “천재의 영감도 머릿속에 지식의 총량이 많이 쌓인 후에야 떠오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난중일기』 이순신은 대표적인 ‘기록형 전략가’로,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부터 2차 전쟁이 끝나는 1598년까지 7년간 매일같이 일상, 일, 대화 등을 세세하게 일기에 기록했다. 저자는 “(이순신이) 불굴의 의지로 난관을 극복해 가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까닭은 모든 것을 일기 형태로 기록하며 자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해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상 속에서 기록을 꾸준히 하면 좋다는 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까? 저자는 “일상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려면 자신을 부감(俯瞰)하듯이 들여다봐야 한다”며 일상을 적기에 앞서 타자의 관점에서 나의 하루를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조금 부끄럽더라도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해 보면 시야를 넓히고, 객관적인 시선을 갖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록은 크게 이야기의 내용을 적는 ‘서사 기록’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진행 상황을 포착하는 ‘장면 기록’으로 나뉘는데, 책에서 기록 습관을 들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장면 기록’이다. 시간대별 일과를 있는 그대로 옮겨 적어 보는 것이다. 시간 효율을 위해 육하원칙에 따라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고 ‘몇 시: 책 읽기, 몇 시: 유튜브 시청, 몇 시: 오전 회의’와 같이 키워드만 짧게 써도 된다. 그 당시 자신의 감정 표현을 간단하게 덧붙이는 것도 좋다.
저자는 “글의 수준보다는 우선 기록을 한다는 데 의의를 두자”라며 “장면 기록은 나다움을 찾는 첫걸음이다. 회상을 통해 떠오른 장면이 앞으로의 삶을 잘 살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