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은 무조건 ‘엄벌’? 다른 대책도 있다
학폭은 무조건 ‘엄벌’? 다른 대책도 있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3.03.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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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부착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하루 만에 자진 사퇴한 이유는 아들의 학교폭력(학폭) 전력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정 변호사의 아들 정 군은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인 A군을 1년 가까이 괴롭혔다. “제주도에서 온 돼지” “좌파 빨갱이” “더러우니까 꺼져라” 등 폭언을 일삼았으며, A군을 따돌리는 무리의 우두머리 역할도 해 왔다. 결국, A군의 신고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는데, 정 변호사는 자녀 문제에 책임을 지기보다 “물리적으로 때린 것이 있으면,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한 것 같다”며 아들을 감싸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문제가 된 건, 학폭위가 정 군에게 전학 조치를 내린 이후에 정 변호사가 보인 행보였다. 정 변호사는 법원에 전학 취소 행정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1심과 2심이 이를 기각하자 대법원까지 상고했다. 학생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게 되면, 수시 전형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끝내 학교폭력에 따른 전학 처분을 뒤집지 못한 정 군은 정시(수능 성적 100%)로 명문대에 진학했다. 가해자 측은 책임과 사과보다는 학폭 전력을 남기지 않으려는 데 총력을 기울였던 셈이다.

정 변호사의 사례처럼 학폭에 대한 처벌의 허점이 나타난 가운데, 일각에서는 학폭 처벌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인 예다. 학폭위는 가해 학생에 대해 서면사과(1호)부터 퇴학(9호)까지 9단계의 조치를 내리고, 학교는 학생부에 이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데, 개정안은 학폭위의 조치사항을 학교가 더 오래 보존하도록 했다. 이를테면, 졸업과 동시에 기록에서 사라지는 교내봉사(3호)는 졸업 후 2년까지, 졸업 후 2년간 남았던 강제 전학(8호)은 10년간 남기자는 방안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학폭 가해자는 수시 전형 입시와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이 역시도 허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학생의 학부모가 학폭위의 처분 취소를 요청하는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 등을 제기해 시간을 끌면, 학폭위의 처분은 그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책 『트라이앵글의 심리』의 저자 이보경 교사는 “학폭위 결정 사안을 놓고 불복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상부 기관에 재심의를 의뢰하는 건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들의 전문성 문제라기보다는 법적인 응보적 정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즉, 학폭을 엄벌주의적으로 접근하는 데 한계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처벌 강화가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없다면, 학폭에 대한 치유와 예방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학폭에서 조명되어야 하는 대상은 가해자만이 아니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방관자도 학폭의 상관관계에 있는 구성원이다. 피해자는 학폭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방관자는 학폭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예방하게 할 수 있는 교육적 조치가 필요하다.

‘회복적 서클’은 학교폭력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하나의 교육책이 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회복적 서클’이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적 대화의 과정, 대화 모임”을 의미한다. 교실에서 서클을 구성할 때에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그리고 방관자 학생 여럿이 모여 원형으로 앉아 이야기를 하고, 교사는 갈등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맡은 진행자가 된다. 이들은 서클에서 서로의 마음을 경청하고 진심으로 사과함과 동시에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저자는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고 머리를 맞대는 과정에서 오히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은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게 된다”며 “단순히 합의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갈등을 중재하는 회복적 서클의 과정이라면 잘잘못을 가리고 징계 처분을 내리고 끝나는 학폭위보다 더 큰 교육적 정책일 수 있다”고 말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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