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조자’ 故 이어령 1주기 특별전… 감상 포인트는?
‘문화창조자’ 故 이어령 1주기 특별전… 감상 포인트는?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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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립중앙도서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다.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다.”

-이어령, 『눈물 한 방울』 中

문학인이자 문화 창조의 아이콘, 세계적 석학이자 교육자, 열린 사고와 포용하는 마음을 가진 ‘시대의 어른’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1년. 국립중앙도서관은 故 이어령 1주기를 맞아 2월 25일부터 오는 4월 23일까지 영인문학관과 함께 도서관 본관 1층 전시실에서 특별 추모 전시를 연다. 전시의 제목인 ‘이어령의 서(序)’는 영면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기록과 기억을 통해 새로운 버전의 이어령을 만나는 시작점이 될 ‘머리말’을 뜻한다. 지난 24일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는 크게 여섯 가지 공간으로 구성됐다. 먼저 프롤로그 성격의 코너인 ‘침묵의 복도’를 지나게 된다. 16m 길이에 달하는 깜깜하고 고요한 길을 걸으며 점차 외부의 소음과 멀어지고, 애도와 묵상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간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첫 번째 방인 ‘창조의 서재’에서는 책상, 의자, 가방, 안경, 필기구, 사전, 명함 등 이어령 선생의 주요 유품을 만나 볼 수 있다. 바닥에는 굴렁쇠 모양의 둥근 원이 유품들을 감싸고 있는데,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총괄 기획했던 업적을 상징하는 것이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우리나라 문화 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그가 어떤 환경에서 창의력을 발휘했는지 손때 묻은 물건들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다. 깜찍한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인형 같은 의외의 물건도 눈에 띈다. 평소 자신과 출생연도(1933)가 같아 이 캐릭터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마지막 원고인 『눈물 한 방울』을 집필했던 책상은 그 위의 소품들과 함께 거의 그대로 옮겨 왔다. 선생은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던 말년에도 이 책상에서 2019년 10월부터 별세 한 달 전인 2022년 1월까지 책에 수록된 110편을 포함해 총 147편의 짧은 글을 썼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이어지는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은 가로 10m, 세로 3m의 벽면에 고인의 단독 저서 185권을 빼곡하게 전시한 방이다. 『저항의 문학』(1959),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 『공간의 기호학』(2000), 『너 어디에서 왔니』(2020) 등 대표 저서 5권의 초판본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저항의 문학』은 선생의 첫 평론집이자 일제 강점기 이후 당시로써는 드물게 한국문학을 다룬 평론집으로, 생전에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저작이다.

평론집, 논문집, 에세이·시·소설·희곡 작품집, 대담집, 강연집, 그리고 어린이책. 의외인 사실은 장르를 넘나드는 이 방대한 저서 중 어린이책이 전체의 3분의 1 분량인 66권이나 된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선생의 모습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사진=국립중앙도서관]

다음으로 ‘이어령과 조우하다’ 코너에서는 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연출자로서,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교육자로서의 활동 모습을 담은 공적 영상과 함께 아내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과 유쾌하게 지내는 모습, 손자를 안고 있는 모습 등 평범하고 따뜻했던 일상 속 인간 이어령까지 영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전시장을 나가는 ‘무한의 길’에는 1933년 출생에서부터 2022년 2월 26일 별세까지 삶의 이력이 정리돼 있다. 에필로그 성격의 코너 ‘굿나잇 이어령’은 저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 등장하는 “그래, 매일 저녁 굿나잇 키스를 하듯이 너의 영혼을 향해 이제부터 편지를 쓰려는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착안해 만든 쌍방향 미디어아트다. 전시를 모두 감상한 뒤 이어령 선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키보드로 입력하면, 해당 문장이 그의 얼굴 형태를 만들어 낸다.

이어령 선생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데이터는 원고가 담긴 텍스트 파일을 포함해 무려 8테라바이트에 달한다. 여기에는 미공개 원고나 단상들도 다수 포함됐다. 전문적인 정리와 연구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앞으로도 그의 신작이 계속해서 출간될 거라는 얘기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이번 전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시대의 어른’을 보다 생생하게 마주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면을 발견할 좋은 기회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전시실 출입구 근처 별도 공간에 선생의 저서 89종을 비치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영인문학관에서는 앞으로 매년 기일마다 추모 전시를 열 예정이며, 오는 가을부터는 문학관 내 이어령 선생이 실제로 사용하던 서재도 부분적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이날 전시장에는 이어령 선생의 아내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이 추모 행사를 위해 방문했다. 그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1주기인데 문득 (남편이) 생각날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문득 ‘벌써 내가 엄마를 잊고 있네’ 했더니 선생께서 ‘걱정 마, 다시 돌아와. 왔으면 안 떠나’라고 하셨다. 아마 당신도 그러지 않으실까 싶다”고 답했다. “선생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즉각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무한대를 뜻하는 기호 ‘∞’를 좋아했다는 이어령 선생. 모든 경계를 넘나들던 그 삶의 행보는, 이제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새로운 생각의 꽃을 피워 낼 것이다.

“끝이 없어. 이어지고 펼쳐질 뿐.”

-이어령,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中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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