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대구‧경기 등 지자체에서 ‘도서관 예산 삭감’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는 공‧사립 작은도서관 예산을 0원으로 삭감했다가 논란이 확산되자 급하게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대구시는 작은도서관 예산을 구‧군에 맡긴다고 했지만, 구‧군에서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이 나오지 않아 비판에 직면했다. 그리고 경기도는 용인시 내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 역할을 하던 사립 공공도서관 ‘느티나무도서관’의 지원금을 전액 삭감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다.
모두 새해 들어 발생한 일이다. 이 지자체들은 올해 예산안을 확정‧발표하면서 도서관의 예산을 줄이려고 시도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도서관이라고 영향을 받지 않을 리 없다. 책 『고립의 시대』의 저자 노리나 허츠는 “영국에서는 2008년에서 2018년 사이 3분의 1의 청년 센터와 거의 800곳의 공공도서관이 폐쇄됐고 미국에서는 2008년에서 2019년 사이 도서관에 대한 연방 지원금이 40% 이상 삭감됐다”고 말한다. 해외에서도 경기가 좋지 않으면 도서관 예산을 삭감하는 시도가 벌어지는 듯하다.
그렇다고 도서관의 예산 삭감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노리나 허츠는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도서관, 공원, 놀이터, 청년 센터, 커뮤니티센터 등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시민성과 포용적 민주주의를 연습한다.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이러한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갈수록 더 흩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그는 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장소를 언급했지만, 사실 이 장소들은 요즘 도서관이 모두 포괄하고 있는 장소들이다. 최근의 도서관은 단순한 독서 공간이 아니라, 만남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므로 도서관 예산 삭감에 따른 대가는 지역 공동체 내에서 타인을 만날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현대 민주주의의 위협 요소로 늘 거론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정치 포퓰리즘과 음모론, 언론과 SNS에서 나오는 가짜뉴스, 여론의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이다. 타인을 향한 혐오를 먹고 생산되는 이들은 갈등을 부추겨 건전하고 성숙한 공론장을 형성할 수 없게끔 만든다. 안타깝게도 이것들은 개인적인 독서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 직업을 가진 시민들이 만나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면서 소통해야 한다. 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 행사와 세미나를 개최하며 시민들을 불러모으는 도서관이 오늘날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지자체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도서관이 아직 책을 빌려주는 곳이나 독서실 같은 공간으로 기억되는 듯하다. 일례로, 도서관 예산 삭감을 주도해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한 의원은 최근 <독서신문>에 “도서관은 요즘 트렌드에 맞게 스마트도서관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마트도서관은 무인도서관이다. 스마트도서관은 생업이 바쁜 시민들이 도서 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보완재’이지, 기존 도서관을 ‘대체’할 만한 공간은 아니다. 도서관 예산 삭감 시도가 이런 몰이해에 기반한 것이라면,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깊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
“요즘 ‘도세권’이라는 말이 생겼을 만큼, (도서관은) 없어서는 안 될 곳이 됐어요. 도서관이 사회의 기본 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도서관을 없앤다거나 예산을 줄인다는 얘기가 나오면 도서관은 크게 흔들려요.” 7년간 마포구 용강동작은도서관 사서로 일해 온 손선미 사서가 <독서신문>에 전한 말이다. 그러니까 현대 사회의 필수 기관으로 자리잡은 도서관을 더 지원해주지는 못 해도 사라지게 하지는 말자. 도서관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기관이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