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위대한 생각이 아닌 ‘병든 몸’이 만든 결과?
역사는 위대한 생각이 아닌 ‘병든 몸’이 만든 결과?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3.01.3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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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동상

역사는 어떤 사상가의 생각으로 바뀌는 걸까. 공자가 꿈꿨던 대동사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처럼 인류 문명에 심대한 영향을 준 생각들이 많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역시 위인들의 뛰어난 머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책 『몸으로 읽는 세계사』에 따르면 역사 속 결정적 사건들은 의외로 머리가 아닌 ‘몸’에 의해 발생되고, 그 운명이 결정됐다. 남매 작가인 캐스린 페트라스와 로스 페트라스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 속에서 위인들의 혀와 치아, 가슴, 쓸개, 장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낸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의 경우가 ‘몸’으로 역사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루터가 활동하던 당시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판매하던 시기였다. 고해나 회개의 필요 없이 그저 교회에 돈만 내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고, 돈을 많이 내면 최악의 벌도 면할 수 있었다. 수도사들은 면죄부를 통해 “하늘나라에 오르기 전에 죄가 불타 없어지는 연옥에서 겪게 될 사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권면하는 대신 그것을 판매하려고만 했다.

책에 따르면 루터는 긴 시간 동안 변기 위에서 고통스러워하며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교회의 부조리를 깊이 생각했다. “나는 악마를 물리칠 때 종종 방귀를 뀌어 쫓아 보냈다”나 “친애하는 악마여, 내 바지 속에는 똥이 있으니 이를 네 목에 걸고 이것으로 네 입을 닦아라”는 루터의 말에서 화장실은 루터가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구원은 면죄부를 구입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루터의 종교적 깨달음은 변기 위에서 탄생했는데, 저자들은 “화가 나 있고 고통스러워하며 변비로 고생하던 남자가 가톨릭의 권위에 맞서는 데서 위안을 찾았다”고 설명한다. 그의 꽉 찬 장이 아니었다면 종교개혁은 조금 늦어졌을 지도 모르겠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한편,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1732~1799)의 초상화는 입을 앙다문 모습이다. 잘못 맞춘 의치 때문에 그렇다. 워싱턴은 어릴 적부터 치아 문제로 고통을 겪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틀니를 사용했다.

워싱턴의 치아 문제는 영국과의 독립 전쟁에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영국 군은 미 독립군의 공식 서신이 담긴 우편 꾸러미를 가로챘는데, 그 안에는 워싱턴이 필라델피아에 있는 치과 의사에게 뉴욕으로 양치질 도구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도 있었다. 당시 영국 군 사령관인 헨리 클린턴 경은 워싱턴의 편지 속 ‘나는 필라델피아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문구를 미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계속 뉴욕에만 주둔할 것이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는 클린턴 사령관이 완전히 착각한 것이었다. 워싱턴과 연합군은 애초에 남쪽으로 진군해 요크 타운에서 콘월리스 부대와 전투를 치를 생각이었다. 클린턴 사령관은 콘월리스 부대를 보강하지 않았고, 연합군은 콘월리스의 부대를 물리쳤다. 요크 타운 전투는 미국독립전쟁의 중요한 전투로 여겨진다. 저자들은 “비록 워싱턴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편지를 빼앗긴 것은 정말 잘된 일”이라고 평가한다. 워싱턴의 치아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더라면, 영국군 사령관이 편지를 오해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노예 해방을 지지했던 그가 56년 동안 노예를 소유하며 그들의 이로 자신의 틀니를 만들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이 밖에도 책은 클레오파트라의 코, 근친결혼으로 유전병을 앓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턱, 전화기를 발명한 벨의 귀, 레닌의 썩어가는 피부 등 인물의 신체에 숨겨진 27가지 비밀을 설명한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역사서는 한 인물이 얼마나 뛰어난 업적을 쌓았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그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몸으로 살피면 조금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영웅 혹은 천재로 평가받던 그들이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시작한다. 그러므로 몸으로 보는 역사는 “당시 시대를 더 넓은 시각으로 보는 출발점”이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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