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막는 힘은 오직 ‘투명성’
재난을 막는 힘은 오직 ‘투명성’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3.01.0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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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구세군 중앙회관에서 열린 2023 시민사회단체 신년하례회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사회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은 것에 이어 지난해 10월 또다시 대량 인명 사고를 경험했다. 이보다 인명 피해 규모는 작지만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수많은 사건·사고도 나열할 수 없을만큼 많다. 전보다 위협감이 줄어들었지만 코로나19 또한 현재 진행형 재난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재난의 성격상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국민들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실제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그날부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재난에는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천재지변이 있는가하면, 예방이 가능한 인재(人災)도 있다. 안타까운 점은 현대에 사는 우리가 경험하는 재난의 십중팔구는 인재라는 것이다. 화산 폭발이나 지진, 홍수 등도 천재지변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과학의 힘을 빌려 예측하고, 재난 대응 시스템을 통해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다. 작은 사고가 큰 규모의 인명피해로 연결되는 것은 온전히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지난 이태원 참사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것은 이 때문이며, 그래서 재난은 공동체의 민낯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시스템의 부재로 재난을 막지 못했다면, 남은 숙제는 후속 조처다. 재난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 숱한 인명 피해를 겪은 한국 사회, 과연 후속 조처는 잘했을까.

“과거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며 그로부터 교훈을 얻지 않는다면 나쁜 일은 되풀이 될 것.” 책 『유류품 이야기』를 쓴 로버트 젠슨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4년 남아시아 쓰나미,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오클라호마 폭파 사건,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까지, 과거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사고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재난 수습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는 이 책에서 대형 사고와 재난의 참상을 덤덤하게 서술한다.

이 책에서 젠슨은 솔직한 사람이다. 잔인한 장면에 대한 서술을 피하지 않으며, 유족들에게 참사를 설명할 때에도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편이다. 실례로, 2015년 스페인에서 독일로 향하던 비행기가 알프스 산맥에 충돌해 승무원과 탑승객 150명이 모두 사망했던 저먼윙스 사고에서도 젠슨은 솔직했다.

젠슨은 유족들을 만나 시신에 대한 신원 확인과 수습 과정에 대한 어려움을 미리 밝혔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 시간이나 하루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몇 달이 걸립니다. 제 예상으로는 넉 달이나 여섯 달 정도가 지나야 신원을 확인해서 여러분께 시신을 양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더 많은 시신 조각이 수습될 것입니다.”

유족들은 그의 말에 잠시 실망했지만, 이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가 절망적인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들에게 달콤한 말보다 쓰라린 진실을 전한 것은 그들이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이 그들에게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덧붙인다.

이런 젠슨이 책에서 강조하는 재난 대응의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투명성’이다. 2017년 72명이 사망했던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사고에서 그는 영국 정부에게 ‘투명성’을 강조한 전략을 제안했다. 그는 “행정 당국에 이해당사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확인해서 건물 안에서 이뤄질 모든 행위를 조정할, 법적으로 인정받은 합의체나 위원회를 만들 것을 재촉했다”고 술회했다. 그래야 주민이 참여해서 상황을 주도할 수 있으며, 조사와 수사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그들이 대충이라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의 극복은 사실과 진실의 구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문장은 이 책의 핵심 문장이다. 재난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진실을 알아야 다가올 재난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 연장 여부가 논의 중이다. 오래 걸릴 일이라면 당연히 연장돼야겠지만, 국민과 유족들에 대한 정치권의 진실된 태도가 우선이지 않을까.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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