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정말 끊어야 할 건… 유해한 ‘말’
새해에 정말 끊어야 할 건… 유해한 ‘말’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2.3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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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일과 더불어 끊고 싶은 나쁜 습관의 목록을 작성하곤 한다. 이미 몸에 익은 습관을 떨쳐 내기란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지만, 이전과는 다른 나로 살고 싶다면 꼭 필요한 일이다. 올해 당신은 무엇과 이별하기로 다짐했는가. 술? 담배? 게으름? 여기, 그 목록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항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말’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의 언어 감수성이 빠르게 높아지는 한편으로 SNS가 발달해 말이 오가는 채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말’ 때문에 구설에 오르는 사람이 늘었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불필요한 논란과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로라도 지금까지 써 온 ‘말’을 점검해 볼 타이밍이다.

책 『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포레스트북스)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결에 사용하는 말 속에 숨은 40여가지 차별의 말을 하나하나 짚어 보려는 시도다. 책은 이야기한다. 말의 품격은 ‘얼마나 많은 어휘를 아느냐’가 아니라 ‘어떤 어휘를 쓰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끊어야 할 말에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무서운 확산력을 지닌 말들을 돌아보자. 요즘은 방송과 언론에서도 인터넷 유행어나 신조어를 성찰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다시 대중의 언어 습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헬린이’(헬스+어린이), ‘주린이’(주식+어린이)처럼 특정 분야에 미숙한 사람을 ‘어린이’에 빗대는 말이나, 특정 세대를 ‘잼민이’(어린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와 같이 싸잡아 혐오하는 말이 그 예다. 

각종 미디어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이 말들의 정확한 의미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에서는 이 말들이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악영향을 준다며, “어린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작고, 귀엽고, 미숙한 존재로 대상화할수록 고독해지는 자는 어른이다. 반대 선상에 놓인 이들을 두어다 한쪽은 미숙하고 한쪽은 성숙하다 일컬으니, 과거보다 완성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어른의 부담감만 늘어날 뿐”이라고 지적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낡아 버린 말들도 있다. 예를 들어 ‘결손가족’은 남녀 보호자와 아이들로 구성된 구시대적 정상가족 모델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가족을 어딘가 하자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표현이다. 2020년 이루어진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10명 중 7명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주거와 생계를 함께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법의 보호를 받든 받지 못하든, 가족 형태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사용해 온 ‘부모’라는 말도 재고해 봐야 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는 실제로 다양한 가족을 가진 아이들을 대하면서 ‘부모’라는 단어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한다. 2020년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부’와 ‘모’가 아이를 함께 양육하지 않는 집은 약 152만가구에 달했다.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가구까지 포함한다면 더욱 늘어날 숫자다.

만약 이 말들에 큰 문제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해당 표현이 차별하고 있는 대상이 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디선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차별 단어에 불편한 사람이 늘어날수록, 차별에 불편한 사람은 줄어든다”며,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불편이 만드는 편안을 다 함께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전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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