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의 ‘뚝심’ 리더십, “그거, 뚝심 아닙니다”
벤투의 ‘뚝심’ 리더십, “그거, 뚝심 아닙니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12.1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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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이끌었던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사진=연합뉴스]

4년 넘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난 13일 고국으로 돌아갔다. 20년 전 4강 신화의 대업을 만들었던 히딩크가 “굿 바이(Good bye) 대신 쏘 롱(So long)”이라는 말을 남기며 재회를 암시했던 것과는 다른 확실한 결별이었다. 인천공항에 모여든 축구 팬들은 떠나는 그에게 연신 포르투갈어 “오블리가두(감사합니다)”와 “따봉(최고다)”를 외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사실 벤투은 늘 여론의 비판을 받아왔던 감독이었다.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중국 리그에서 실패한 감독을 왜 데려오냐”는 비난을 받았고, ‘빌드업 축구’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축구 철학은 좀처럼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한국 축구의 라이벌 일본에게 3-0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하자 감독으로서의 자질도 크게 의심받았다. 지난 9월 국가대표 평가전에서는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던 이강인 선수가 1분도 출전하지 못해 논란이 됐다. 안 쓸거면 왜 불렀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벤투는 선수 선발이나 전술‧전략을 바꾸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벤투가 고집스럽다며, 이를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벤투의 팀이 월드컵에서 강팀들을 상대로 잘 싸웠다. 스타 플레이어가 넘쳐나는 포르투갈을 이기고 꿈에 그리던 16강에도 진출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16강 진출에 벤투의 리더십은 재조명받았다. 사실 그의 고집은 문제가 아니라 지켜야할 원칙이었으며,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팬들은 싸이의 노래 ‘아버지’ 가사 중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라는 소절에서 아버지를 ‘벤버지’로 바꾸어 부르며, 그동안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리더십을 ‘뚝심’이라고 부른다. 검색 창에 ‘벤투’와 ‘뚝심’ 두 단어를 치면 그가 자신의 뚝심으로 한국 축구를 어떻게 바꿨는가에 대한 분석 기사가 줄줄이 뜬다.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비판과 비호를 받았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팀을 성장시킨 벤투의 리더십을 호평하며, 지금 이 시대에 이만한 리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을 ‘뚝심’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다. 일단, 뚝심에 대한 정의부터 살펴보자. 뚝심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는데 하나는 ‘굳세게 버티거나 감당하여 내는 힘’, 다른 하나는 ‘좀 미련하게 불뚝 내는 힘’이다. ‘뚝심’ 리더십이라는 말이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건 그가 팬과 언론으로부터 쏟아지는 비판을 자신이 옳다는 마음으로 ‘굳세게’ 혹은 ‘미련하게’ 견디기만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에서도 벤투 리더십을 들여다볼 수 있다. 벤투는 군림하는 리더가 아니라 선수들의 지지자(支持者)에 가까웠다. 어쩌면 팬들의 표현대로 ‘벤버지’가 가장 정확한 말일지 모르겠다. 이런 벤투의 리더십에 어울리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요즘 화제가 되는 ‘임파워먼트 리더십’이다. 미국의 리더십 코치 프랜시스 프라이와 앤 모리스는 책 『임파워먼트 리더십』에서 “리더는 주인공이 아니”라며, “팀의 중심은 리더가 아니라 팀원들이다. 이때 리더는 팀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거들 뿐”이라고 설명한다.

벤투 감독이 4년 동안 구현하려고 애썼던 ‘빌드업 축구’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벤투호의 전략은 이랬다. 먼저 상대에 대한 맞춤 분석을 진행하고 그에 대한 기본 전략을 만든다. 선수들은 전략을 이해하면 자신의 스타일을 추가로 입힌다. 경기 현장에서는 기본 전술을 고집하지 않고 현장 상황에 맞춰 변형할 수 있다. 먼저, 기본적인 환경을 마련해주고 선수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더해 완성되는 축구다. 그러니까 그의 전략에서는 현장과 선수들의 판단력이 가장 중요하다.

국가대표 팀닥터로 일했던 김광준 의사는 책 『로드 투 카타르』에서 벤투 감독의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벤투 감독은 선수 성향을 관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도 보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 식사할 때, 경기할 때, 훈련할 때,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코치나 스태프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선수들의 정보를 입수한다. 스스로의 관찰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취합하여 판단하려고 한다. 자기 판단이 틀릴 수 있으므로 맹신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3일 진행됐던 포르투갈 전은 벤투의 진면목을 보여줬던 경기이기도 하다. 훌륭한 팀은 리더가 없어도 잘 굴러간다. 리더의 철학이 이미 팀원들의 마음 속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이란 리더가 자리에 있음으로써 구성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그리고 자리에 없을 때에도 그 영향이 이어지게 하는 것”. 이것이 프랜시스 프라이와 앤 모리스가 말하는 ‘임파워먼트 리더십’의 백미다.

카타르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한국은 다음 감독을 찾고 있다. 누가 벤투 이후 국가대표팀을 맡아 또 한번의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그러나 벤투를 떠나보내며 들었던 이별의 아쉬움을 새 감독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꾸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되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축구대표팀 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말이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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