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高)’ 시대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돈을 굴리는 재테크보다는 소소한 일상 속 절약법에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어려운 시기,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하는 심리엔 누구나 공감할 터. 그런데 절약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오히려 낭비가 되고 있다면 어떨까. 책 『사지 않는 생활』(스노우폭스북스)에서는 대량 구매, 최저가 구매와 같은 소비 습관이 정말 절약 효과가 있는지 따져 보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물건을 낱개로 사는 것보다 대형 마트나 온라인 상점에서 대량 구매하면 개당 단가가 훨씬 낮아진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 예상보다 큰 지출이 이루어지더라도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선, 대량 구매는 물건의 소모 속도를 빠르게 한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다량의 물건을 집에 쟁여 두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생각에 마구 쓰기 쉽다. 특히 소비 기한이 있는 식품류는 기한 내에 먹지 못하면 버려야 하므로 더욱 빠르게 사용해 버린다. 대량 구매로 개당 단가를 낮춰도 이렇게 물건의 소모 주기가 짧아지면 오히려 총지출이 커질 수 있다.
대량 구매를 즐기다 보면 물건을 쌓아 둘 곳이 모자라 ‘집이 좁다’거나 ‘수납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불필요한 물건들 때문에 수납 용품이나 가구를 들인다면 이는 또 다른 낭비다. 저렴하게 장을 보는 대신 냉장고를 추가로 사고, 전기를 써 가며 돌려야 한다면 과연 그것이 합리적인 소비라고 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그 외에도 매번 최저가를 찾아 헤매거나, 배송비 절약을 위해 다른 상품을 찾아 한 번에 결제하는 일 등을 모두 낭비라고 규정한다. “푼돈을 아끼려고 시간이라는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삶을 운용하는 데는 돈 외에도 사람, 시간, 에너지 같은 자원이 꼭 필요하고, 이 자원들이 부족하면 그 부분을 메꾸기 위해 돈이 또 들어간다.
게다가 물건을 구매하는 기준이 오로지 최저가에 맞춰지면, 할인 폭이 크거나 묶음 배송이 된다는 이유로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저자는 “나 역시 여러 상품 중에서 가장 싼 물건을 선택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조건이 거의 비슷할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며, ‘싼 물건’이 아닌 ‘필요한 물건’을 소비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