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아이를 낳은 뒤 나는 줄곧 어떤 방향의 생각 쪽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것은 대부분 후회와 관련된 것이었고 들여다보면 검게 출렁였다. 시간이 많았다면 소설을 더 잘 쓰지 않았을까, 돌아보는 게 대표적이었는데 그 생각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던 건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내가 더 잘 알았기 때문이다. <55쪽>
베이비시터가 놀이터에서 아이의 주의를 끄는 동안 나는 몰래 도망쳤다. 아이를 울리지 않으려고 속였다. 아이가 울면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하는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몰래 도망쳤다. <69쪽>
내가 우는 아기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도망친 적이 있으니까. 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아이를 외할머니집으로 보내버린 적이 있으니까. 어린이집에서 아침에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두고 사정없이 돌아 나온 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내가 내 아이를 무수히 버렸으니까. 세상 모든 엄마는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가엾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된 모든 어른, 한때 아이였던 사람도 모두 가엾다. 세상의 모든 여리고 약한 자들, 아이, 노인, 소수자, 장애인, 빈민, 외국인, 난민은 가엾다. <74~75쪽>
걸핏하면 불쑥 고개를 들어 나를 좀먹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간다. 밥을 지으면서도 글을 지을 수 있음을, 돌봄의 영역 바깥에서 나를 실현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 아님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146쪽>
[정리=김혜경 기자]
『돌봄과 작업』
정서경, 서유미, 홍한별, 임소연, 장하원, 전유진, 박재연, 엄지혜, 이설아, 김희진, 서수연 지음 | 돌고래 펴냄 | 208쪽 | 1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