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만들자 해고” ‘편집자 A’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만들자 해고” ‘편집자 A’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2.0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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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열린 ‘오렌지디 직장 내 괴롭힘 및 부당해고 당사자 추가 폭로 기자회견’ [사진=출판노동유니온]

“저는 입사 3개월 차, 담당했던 책 『시맨틱 에러 포토에세이』를 출간하는 순간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해외에 수출되며 기사에 오르내릴 때, 저는 납득할 수 없는 해고 사유서를 받아 들고 그 내용이 왜 잘못된 것인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콘텐츠 기업 ㈜리디의 자회사 오렌지디가 불매 운동까지 낳았던 ‘편집자 부당해고’ 건으로 또 도마에 올랐다. 당사자가 지적한 부당한 해고 사유를 인정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업무 복귀를 지시한 후 무단결근 횟수를 세며 두 번째 해고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출판계 노조인 출판노동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는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해고 당사자 편집자 A씨와 추가 폭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A씨는 이날 해고 사유서 전문을 공개하며 모든 평가 항목에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8억원 이상 매출을 내고, 해외에도 판권이 수출된 오렌지디의 최대 베스트셀러 『시맨틱 에러 포토에세이』 책임편집자였던 A씨는 지난 5월 SNS를 통해 “책을 다 만들자마자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부당해고 사태를 공론화했다. A씨는 경력직 정직원으로 채용됐지만, 첫 출근일이었던 2021년 12월 13일 사전에 고지받지 못한 3개월짜리 수습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승낙한 단기 수습 계약은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의 손쉬운 명분이 되어 돌아왔다. A씨가 해고 통보를 받은 3월 7일은 『시맨틱 에러 포토에세이』 예약판매가 시작된 날이었다.

A씨는 해고의 발단이 직속 상사 C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지적했던 일이라고 본다. C팀장은 낮은 연차의 동료 직원 B씨의 업무 능력을 문제 삼아 폭력적인 언행을 하면서 정당한 업무 지도가 아닌 감정적인 괴롭힘을 지속했는데, A씨가 이를 지적하면서부터 A씨에 대한 C팀장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이다. A씨는 “회사는 객관적인 평가와 검증 시스템이 부재했기에, 상급자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검증 없는 해고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해고 과정도 문제였지만, A씨는 무엇보다 “공정하지 않은 평가 기준”과 “사적 감정”이 반영된 해고 사유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례로 해고 사유서 항목 중 “이미 결정된 마케팅 영역에 대해 재고려를 요청, 도서 마케팅 전문가에 대한 존중과 배려 부족”은 A씨가 회의에서 도서 판매 촉진을 위한 전략을 제안했으나 채택되지 않았고, 아쉬움을 느껴 근거를 보충해 다시 제안했으나 거절되자 이를 수용했던 일이다. A씨는 “(편집) 업무를 하다 보면 숱하게 있는 일”이라며, 심지어 면접 당시 정은선 오렌지디 대표가 “우리가 전부 반대해도 확신이 있으면 밀어붙여서 설득해 달라”고 당부했음에도 이 내용이 해고 사유 중 하나로 적혔다고 말했다.

A씨의 공론화는 당시 오렌지디와 리디에 대한 불매 여론으로 이어지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7월, 오렌지디가 진상조사와 함께 ▲A씨의 원직 복직 ▲C팀장과의 물리적 및 업무적 완전 분리 ▲미지급 임금과 위자료 지급 ▲회사의 공식 입장 발표 ▲수습 제도 개선 등을 약속하면서 양측은 합의에 이른 듯 보였다. 그러나 9월, 오렌지디가 조사를 위해 선임한 법무법인 태평양이 ‘평가가 객관적 사실에 근거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태평양은 대면 설명을 거부했고, 오렌지디는 이 조사 결과를 수용해 해고 절차상의 문제만을 인정했을 뿐 해고 사유서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조사에 앞서 A씨는 출판 노동자들의 증언이 포함된 A4 156장 분량의 반박 자료를 사측에 전달한 바 있다.

출판노동유니온 측은 “(사측 입장과는 달리) 통보서 작성 당시 이루어졌어야 할 사실 검증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10월에 이뤄진 대면 면담에서) 당시 마케팅·HR 담당 실장은 ‘사실 검증을 하지 않았고 결재만 했다’ 말하고 출판팀 실장은 ‘인사팀에서 하지 않았느냐’고 그제야 묻는 상황인데 대표는 검증을 했다고 주장한다”고 꼬집었다.

A씨가 책임편집을 맡았던
A씨가 책임편집을 맡았던 책 『시맨틱 에러 포토에세이』. A씨는 24일 기자회견 이후 SNS를 통해 해고 사유서 전문과 그에 대한 반박 자료를 공개했다. 

현재 A씨는 오렌지디의 업무 복귀 지시에 불응하고 있다. 오렌지디는 지난 15일부터 A씨에게 무단결근 일수를 세고 있다고 통보하며 사실상 두 번째 해고 수순을 밟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SNS 활동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을 언급하며 “해사 행위를 멈추라”고 경고했다. A씨는 지난 16일 SNS를 통해 “그 가혹하고 악독한 평가가 정당했다는 회사에,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 어떻게 돌아갈까”라며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 요구는 똑같다. 해고 사유가 사적 감정을 기반으로 악의적 왜곡과 비약으로 쓰인 것을 인정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취재 결과, 오렌지디는 여전히 해고 절차에 문제가 있었을 뿐 평가는 객관적으로 이뤄졌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오렌지디 관계자는 “내부 인사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A직원에 대한 수습 종료 및 부당해고가 있었으나, 회사는 문제를 인지한 후 당사자와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고 소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해 곧바로 해고 철회, 원직 복직을 시행했다”며, “이슈를 야기시킨 내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그 결과에 따라 리더급의 인사 조치도 진행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A씨가) 원직 복직으로 이미 무효화된 수습 종료 사유에 대한 개별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며 여전히 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원만한 업무 복귀를 위해 사내 제도와는 다르게 A씨가 요구한 전면 재택근무를 승인했음에도 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반면 A씨를 대변하는 출판노동유니온의 입장은 달랐다. 우선 인사위원회에 관련 인물들이 회부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공유받은 바가 없으며, 회사로부터 “그럴 의무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게다가 애초에 A씨는 해고의 절차뿐만 아니라 해고 사유서가 작성된 경위와 내용을 문제 삼아 왔는데, 오렌지디 측에서는 절차상의 문제만을 인정하며 이를 반영한 인사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기에 적절한 인사 조치가 이루어졌을 리도 없다고 봤다. 이들에 따르면, 태평양의 조사 결과에서도 C팀장의 B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은 일부 인정됐으나 C팀장은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해고 사유가 무효화됐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평가가 객관적이었다고 말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총 25개의 평가 항목 중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A씨는 업무 복귀 지시를 받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내 협업 툴에 정상적 접근이 차단된 상태라고 했다. 오렌지디는 본지 취재에 “앞으로 인사 시스템 및 조직 문화를 정비해 더 이상 같은 이슈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혀 왔지만, 장장 9개월에 걸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A씨에게는 공허한 약속일 뿐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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