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바나나, 똥에 수억 원의 가치가?
변기, 바나나, 똥에 수억 원의 가치가?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1.20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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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건희 컬렉션’ 등으로 아트 컬렉터가 주목받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미술품 투자를 통한 아트테크(아트+재테크)가 이전에 비해 대중화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입문자에게 ‘난해한’ 현대미술의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다.

평범한 변기를 전시장에 놓고 작품이라 주장한 마르셀 뒤샹의 이야기야 익숙하니 그렇다 치자. 벽에 붙여 놓은 바나나 하나가 약 1억 4,000만원에 낙찰되고, 그걸 또 다른 예술가가 배고프다는 이유로 먹어치우고, 잠시 후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운 바나나가 작품을 장식하는 일련의 과정은 범인(凡人)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2019년 국제적 아트페어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이다.

이런 작품은 또 어떤가.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에 생산되어 저장됨.’ 현대미술가 피에로 만초니는 이런 문구가 적힌 통조림 깡통 90개를 제작해 각각 에디션 넘버를 붙이고, 진품임을 보증하는 서명을 남겼다. 흔히 좋지 않은 예술 작품을 욕할 때 ‘똥’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진짜 똥이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이 작품은 당시 동일한 무게의 금과 같은 가격에 팔렸고, 지금은 수억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도대체 현대미술이란 무엇이며, 단순하고 엉뚱한 아이디어에 불과해 보이는 작품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뭘까. 책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행성B)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내놓는다.

우선 현대미술은 ‘지구촌’이라는 말이 탄생한 1960~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과거에는 미술 사조가 특정한 예술가 집단이나 운동에 의해 변화했다면, 이때를 기점으로는 전 세계 곳곳에서 팝아트, 미니멀리즘, 퍼포먼스, 미디어 아트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는데 이 모든 변화의 형태를 아우르는 하나의 범주가 바로 현대미술이다.

과거에는 미술이라고 하면 “정교하게 갈고 닦은 선과 형태를 다루는 솜씨와 기술, 대가의 기교가 합쳐져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바나나, 똥 같은 미술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고정관념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포맷을 활용한 작품이 늘어나고, 아이디어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개념 미술 사조가 등장하며 미술과 미술 아닌 것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책에서는 “예술에 대한 인식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현실이 변하듯 함께 변화한다”며 “예술작품은 제안이다. 그것은 어떤 사물을 단순히 부분의 합으로만 보지 말고 예술로 보라고 청하는 초대장과 같다”고 설명한다.

아트 컬렉터 이소영씨는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이 공개된 날 저녁, 마이애미 거리의 식당에 해당 작품을 패러디한 ‘가짜 바나나’들이 넘쳐났던 유쾌한 경험을 들려 준 바 있다. 평범한 바나나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한 작가의 아이디어가 예술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책에서도 말하듯, 난해한 현대미술을 접할 때는 ‘이게 예술이야?’ 대신 ‘뭔가가 예술로 변신하는 순간은 언제부터지?’, ‘이게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지?’라고 질문해 본다면 훨씬 흥미로운 감상 경험이 될 것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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