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아 “안심할 수 있는 밤을 기다리는 분들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임진아 “안심할 수 있는 밤을 기다리는 분들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11.12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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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생활』을 쓴 임진아 작가 [사진=최현식 PD]

한 애서가의 책을 대하는 마음이 담긴 책 『읽는 생활』. 이 책의 저자 임진아는 책 『빵 고르듯 살고 싶다』와 『오늘의 단어』에서 자신의 일상을 글로 풀어낸 작가이자, 『어린이라는 세계』, 『올리브색이 없으면 민트색도 괜찮아』의 표지를 그린 삽화가다. 즉, 그는 책을 쓰고 그리는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

그러나 그를 이렇게만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많이 부족하다. 단순히 그가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동시에 “책을 보면서 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책과 보내느라 질릴 만도 한데 오히려 “책으로 스트레칭”을 한다. “읽기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다름없이 수많은 책을 만져보고 열어보면서, 잔잔하게” 몸을 펴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동네 서점에 들러 책이 놓인 선반을 구경하고, 자기 전에는 계란을 삶으면서 부엌에 서서 책을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지와 띠지, 후기까지 책을 이루고 있는 것은 모두 읽어보려는 사람, 책을 너무나 사랑해서 “서점의 작은 코너에서, 누구나의 생활을 응원하는 한 권의 책을 닮는 것”을 꿈꾸는 사람.

이쯤 되면 궁금하다.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그토록 책을 좋아할 수 있느냐고. ‘읽기’보다 ‘보기’가 더 환영받는 이 시대에 임진아는 ‘위로’라는 말로 읽기의 매력을 소개한다. 과연 그의 읽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지난 7일 그의 책이 탄생한 서울 마포구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읽는 생활』에 대해 물었다.

Q. ‘읽는 생활’이라는 책 제목 앞에 ‘나를 부지런히 키우는’이라는 부제가 붙었어요. 여기서 키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책 제목과 부제는 편집자님이 지어주셨어요. 그런데 저도 사실 이 부제가 마음에 들었어요. 부제와 제목이 이어져서 자연스럽게 읽히고 이 책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역할을 하니까요. 읽는다는 것에 여러 의미가 있잖아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때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할 때도 읽는다라는 말을 쓰죠. 결국 읽는다는 행위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혹은 내 마음을 좋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나를 부지런히 키운다’는 의미가 될 거예요.”

Q. 책의 겉표지에는 책 모양의 창문이, 속표지에도 책을 읽다 잠든 아이 그림이 있어서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전적으로 출판사 분들에게 맡겼는데, 이걸 처음 받아봤을 때 놀랐었어요. 왜냐하면 『어린이라는 세계』처럼 제가 그리는 캐릭터는 보통 표지에 그려지면서 작품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안에 숨어 있고 밖에 책 모양을 한 창문을 그려놓았으니까요. 처음에는 독자분들이 제 책을 알아볼 수 있을까 고민이 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게 책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디자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아이가 밖에서 자는 것보다 책 안에서 잠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 좋았기도 했고요.”

Q. 그렇게 보면 책이 더 포근하게 느껴지네요.

“네. 아마 그런 의도로 디자인해 주신 것 같아요. 이 창문 그림들은 원래 하나만 드렸었는데요. 디자이너 분이 이게 너무 좋다고 하셔서 안쪽에 ‘도비라(본문에 들어가기 전 책 제목과 안내 글이 담긴 속표지)’에 하나씩 앉힐 수 있게 새로 그렸어요. 그래서 이 그림이 책을 잡아주는 아이콘처럼 된 것 같아요. 이 창문들이 결국엔 책을 더 환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사진=최현식 PD]

Q. 『읽는 생활』은 작가 임진아의 독서 인생을 기록한 책이잖아요. 지금까지 출간된 책이 빵이나 도쿄, 단어 등을 소재로 다뤘다면, 이번에는 책 그 자체인데요. 계기가 있었나요?

“『실은 스트레칭』이라는, 제가 썼던 작은 책이 있었어요. 도쿄에 있는 친구가 하는 책방에서 전시를 했었는데, 그때 만들었던 책이었죠. 이 책이 사실은 그 당시에 제가 독서를 생각하는 마음이었어요. 한 책을 진득하게 읽지 않고 여러 책을 번갈아 가면서 읽거나 조금씩 읽는 것이 제 독서 방식이라는 점에서 ‘스트레칭’이라고 비유한 거예요. 이 전시를 통해서 제가 책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또 얼마나 안심하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림도 그리면서 단행본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책을 읽으면서 안심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책과 내가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쓰기 시작했어요. 저는 제 자신을 회사 다닐 때 책 만드는 디자이너 혹은 책 만드는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지금은 ‘책이라는 마을에서 독자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또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흐려지지 않아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Q. 다른 작가 혹은 독자분들이 임진아의 문장이나 글에 대해 여러 표현을 쓰잖아요. 섬세하다, 담백하다, 평온하다, 잔잔하다 등이 있는데요. 어떤 형용사가 임진아의 문장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자주 쓰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업무 메일을 보낼 때 ‘느긋하고 평온한 하루 되세요’라는 말을 꼭 쓰거든요. 일을 할 때 그런 마음을 잠깐이라도 느끼셨으면 좋겠어서요. 제 책의 문장을 쓸 때도 같은 생각을 하는 편인 것 같아요.”

Q. 정말 일상의 휴식처럼 느껴지는 문체인 것 같아요. 문장을 만들 때 각별히 신경 쓰는 요소도 있나요?

“짧은 문장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 문장 안에서 독자들이 ‘맞아, 나도 이런 기분을 알 것 같아’라고 공감하기 쉬운 문장을 쓰고 싶어 해요. 누구나 아는 표현보다는 누군가에게 뾰족하게 닿을 수 있도록 한 번 더 고민해서 써보려 해요. 글을 쓸 때도 언어를 정리하는 일에 몰두를 많이 하는 편이죠.”

Q. 책에서 에세이를 ‘쓰레기’로 치부하는 마음을 “끝내 기억할 것”이라고 했어요. 아마 이 책에서 가장 감정이 강하게 드러난 곳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저는 후기 읽는 것을 좋아해요. 쇼핑몰 후기든 배달 앱의 음식 후기를 자주 읽어봐요. 그런데 저 또한 책이나 물건들을 선보이면서 살다 보니까 제 작품에 대한 후기도 많아져서 안 찾아볼 수가 없더라고요. 다만, 살펴보니 ‘사람들이 책에 대해서는 좀처럼 칭찬해주지 않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몇 번씩 여러 서점에 드나드는데, 에세이 코너에 가면 너무 쉽게 ‘나도 쓰겠더라’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좋은 말이 아닌 거라는 거 알잖아요. 또 에세이에 대해서는 책에 쓰인 나무가 아깝다는 식으로 이야기도 하고요. 결국, 이런 말들이 건강한 후기는 아닐 것 같아서 이야기를 꺼냈죠.”

Q. 그렇다면 좋은 후기 문화는 어떤 걸까요.

“좋은 후기는 비교하지 않고 그 대상만 이야기하는 후기라고 생각해요. 간혹 ‘00보다 좋은 00’ 혹은 요즘 이런 거 많은데 그렇지 않아서 좋다는 식의 후기는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굳이 어떤 걸 저버리면서까지 이걸 좋다고 말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Q. 우리가 읽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요즘에는 읽기에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럼에도 독자분들에게 ‘읽기’의 매력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나요?

“읽기가 조금 훈련이 되면 내 마음을 잘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원래는 이렇게 잘 읽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어린 시절 처음 엄마와 서점에 갔을 때 사려고 했던 책은 그림만 있는 책이었어요.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이켜 보면 읽는 훈련을 계속 했었고, 읽기를 점점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거쳤던 것 같아요.

책 읽기가 달리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사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한동안 이해 못했었어요. 일주일에 2~3번 10km씩 왜 달리고 힘들어 하나, 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저도 막상 달리기에 흥미를 붙이니까 안 달리고는 못 배기겠더라고요.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계속 읽으니까 잘 읽어지고, 또 계속 읽고 싶어지고요. 그렇게 됐을 때 내 마음에 지나가는 이름 모를 감정들이 문장화되고, 그게 메모가 됐다가, 훗날에는 점점 글로 완성되는 과정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제가 그런 걸로 많은 위로를 받았거든요.”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듣고 보니, 결국 ‘읽기’란 나의 마음을 설명해줄 수 있는 장면을 찾는 일 같아요.

“맞아요. 사실 내 기분이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이런 거였는데’라고 깨달을 때가 많아요. 그런 문장들을 만나면서 더 책이 좋아졌던 것 같아요.”

Q. 같은 맥락에서 책의 문장이 나의 마음을 대변해 줄 때 “곧장 문장을 잃는 사람이 되었다”는 문장도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독자로서는 내 마음을 완벽히 대변하는 문장을 만나면 마냥 행복하잖아요. 그런데 쓰는 사람이 되고 나니까 ‘나는 왜 이런 문장을 떠올리지 못했지’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때 나는 조금 늦은 사람이 된 거죠. 그럼에도 그런 사람을 만났다는 게 저한테는 더 강하게 남더라고요. 그래서 잃었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더 채워진 거예요.”

“내가 쓴 나의 문장보다 타인에게서 우러나온 전혀 다른 맥락의 문장이 나를 대변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마치 지각생이 된 기분을 겪는다. 늦은 줄도 몰라 숨이 차지 않는 지각생이 되어 멀뚱멀뚱하게 먼저 쓰인 문장을 바라본다.

그 공허함은 곧장 나의 다른 부분을 채워준다. 내가 나에게 미처 해주지 못했던 말이자 가장 듣고 싶던 한마디. 가장 쓰고 싶은 표현은 잃었지만, 타인으로부터 발견한 내 마음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 『읽는 생활』, 188쪽.

Q. 지금까지 『읽는 생활』을 비롯해 여러 책을 냈어요. 책과 관련해 독자에게 받은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나요?

“엄청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생각 나는 거는 받은 지 며칠 안 된 인스타그램 DM이에요. 그분이 이 책이 나와서 너무 기쁘다면서 여러 동네 서점을 다니다 보면 제 책이 항상 에세이 코너에 잘 보이는 곳에 있는 걸 보고 안심하신대요. 그래서 서점원 분들 혹은 서점 주인 분들에게서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 주고 있다는 것을 꼭 아셨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주셨어요. 뭉클했고 무척 감사했어요.”

Q. 이 책을 선물한다면 어떤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나요?

“최근 사회적으로 힘든 사건이 많잖아요. 이 책의 후기를 찾아보다가 어떤 분이 트위터에서 지금 읽고 있으면 좋은 책들을 추천하는 걸 봤어요. 그런데 그 책들 중에 하나가 제 책이더라고요. 신기하면서도 감사했죠. 그러면서도 이 책을 뽑아주신 이유가 뭘까 고민해봤어요. 책에 그런 내용이 있잖아요. 매일 안전한 밤을 만나는 것을 목적지로 삼는다고요. 요즘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누군가는 아픈 나날을 살고, 또 누군가는 매일 힘든 뉴스에 지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냥 하루가 버겁기도 하고요. 그런 하루를 살다가 언젠가 우리는 두 발을 뻗어도 되는 밤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책이 어쩌면 그런 밤에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네요.”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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