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청정국 코리아? 150년 묵은 한국의 인종차별
인종차별 청정국 코리아? 150년 묵은 한국의 인종차별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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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국인은 인종차별의 가해자’라고 이야기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가장 먼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발발 초기 유럽에서 있었던 한국인 유학생의 피해 사례를 들며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혹자는 인종차별이 있긴 하더라도 “이만하면 괜찮은 나라 아니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 『한 번은 불러보았다』의 저자 정회옥 교수에 따르면 우리는 약 ‘15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인종차별을 해왔다.

저자는 “한국인에게 ‘인종’ 관념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1876년 개항 이후”라고 말한다. 당시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한 이후,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조선의 이권을 노리고 진출했는데, 이 때 서구의 인종주의에 기반한 문명 개념이 조선에 뿌리를 내렸다. 서구 인종주의는 백인을 문명의 주체로 삼고, 유색인은 열등한 타자로 삼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구미에 유학을 다녀온 조선 지식인들은 인종주의를 걸러내지 못한 채 근대적 매체인 신문을 통해 서구의 인종 개념을 대중에게 전파했다.

“흑인들은 가죽이 검으며 털이 양의 털같이 곱슬곱슬하며, 턱이 튀어나왔으며, 코가 넓적한 고로 동양인보다도 미련하고 흰 인종보다는 매우 천한지라…” - <독립신문>, 1897년 6월 24일.

서구의 인종 개념에 영향을 받은 근대 한국인의 인종주의는 인종을 백인-황인-흑인 순으로 위계를 나누면서, 백인의 우월한 면모를 배우자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같은 황인이지만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조선이 따라야 할 모델로 받아들였으며, 지식인들은 사회진화론을 인용하며 조선이 왜 약소국이 됐는지, 어떻게 하면 강대국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개화와 근대화의 필요성을 정당화했다. 저자는 “인종주의적 사회진화론은 조선인의 인종적 열등감을 자극했고, 자기 정체성과의 내적 갈등을 유발했으며, 나아가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비판의식을 마비시켰다”고 평한다.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일본은 각종 연구를 근거로 들며 한국인의 열등함을 강조했고, 친일파 등 한국인들은 이를 내면화하면서 대중들에게 우리의 피를 개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는 한편,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저항적 민족주의’를 강조했는데, 역사학자 신채호는 단군의 자손인 한민족이 단결해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고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단일민족주의’와 ‘순혈주의’를 강조한 민족주의는 ‘배타성’을 드러냈다. 결국 일제와 친일파가 주입한 ‘열등감’과 독립운동가의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배타성’으로 한국식 인종주의가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은 ‘반공주의’와 다 같이 죽기로 싸워 민족을 지키자는 ‘일민주의(一民主意)’를 체화하며 ‘배타성’을 키우고, 경제적‧군사적인 원조를 주었던 미국을 찬양하는 계기가 됐다. 이어 1960년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하자 ‘우월한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경이 하나로 통합된 세계화 시대에는 타민족을 파트너가 아니라 경쟁자로 간주했고, 지구촌 경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한민족’이라는 표현은 더욱 강조됐다. 세계화를 ‘경쟁’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볼수록, 한국의 국격이 신장될 때마다 경쟁에서 뒤쳐진 타민족과 타 인종에 대한 혐오도 커졌다. 유튜브에는 한국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국뽕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의 국가를 차별하는 콘텐츠나 댓글이 다수 포함돼 있다.

오늘날 SNS나 기사 댓글, 커뮤니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혐오 표현 ‘흑형’ ‘짱깨’ ‘똥남아’ ‘개슬람’ 등은 모두 한국식 인종주의가 타민족을 향해 발산해낸 것들이다.

저자는 “한국식 인종주의가 형성된 연원을 살펴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별다른 노력 없이 스며들었다”며 “바꿔 말하면 인종주의를 우리 땅에서 없애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환대(hospitality) 개념을 인용하며 한국인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 그에 따르면 데리다는 환대를 ‘조건적 환대’와 ‘무조건적 환대’로 분류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외국인이 김치를 잘 먹거나, 세종대왕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등 한국을 치켜세워야 그를 인정하는 조건적 환대를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태도를 달리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우리는 150여 년 전부터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며 “식민 지배의 경험을 통해 ‘민족’이라는 전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관용’과 ‘환대’의 전통을 만들 차례”라고 말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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