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좌우되는 ‘호구’ 같은 나, 왜?
남에게 좌우되는 ‘호구’ 같은 나, 왜?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9.0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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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나 가게에서 정당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부탁할 때도 “죄송하지만”이라는 말을 하고, 회사 동료의 실수로 내가 피해를 본 상황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가 다시 한 번 확인했어야 하는데”라며 내 잘못처럼 말한다. 타인을 돕거나 배려할 때는 마음이 편한데, 반대로 내가 도움을 받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급기야 연인이 상처받을까봐 이별을 통보하지도 못하고, 차라리 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신간 『모두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웨일북)에 소개된, 남들을 강박적으로 배려하면서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예시다. 모두들 좋은 사람이고 싶다고 말하지만 좋은 사람으로 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호의를 베풀었더니 호구 취급으로 돌아오는 일도 흔하다. 평판이 좋아도 속으로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내가 아닌 타인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다 보면 뭐든 내 탓으로 돌리고 자책하는 게 차라리 편하다 느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상담심리 전문가인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타인을 배려하는 이유는 ‘성격화된 수치심’ 때문이다. 뭔가를 잘못한 듯한 죄책감이 쌓이면 결국 자기 자신마저 잘못된 사람으로 인식하는 수치심이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자존감을 낮아지게 한다. 죄책감을 가장 괴로운 감정으로 인식하기에, 죄인이 되느니 호구가 되어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맞춰 주기를 선택한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가스라이팅에도 취약하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맞는 일반적인 죄책감과 수치심은 우리가 성찰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만 그런 감정이 만성화되면 스스로를 갉아먹는 삶의 방식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수치심의 성격화는 어떨 때 일어나는 것일까? 저자는 “몇 번의 경험들만으로는 절대 ‘성격화’가 되지는 않는다. 더 어린 시절에, 더 강렬하고, 더 반복적으로 이런 경험들을 했을 때 죄책감과 수치심이 성격화된다”고 말한다.

성격은 평생 조금씩 변화하지만, 대부분 성인이 되기 전에 그 틀이 형성된다.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과도한 부담을 떠안았던 아이들에게서 수치심의 성격화가 잘 일어난다. 가령 ‘부모화’란 자녀가 부모의 역할과 책임을 떠맡는 경험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의 어린 자녀가 집안일이나 동생 돌보기 등을 담당하는 것은 ‘도구적 부모화’, 어린 자녀가 가족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정서적 부모화’다. 자신의 욕구를 우선시해도 될 시기에 이미 어른의 삶을 산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남을 위해 사는 것을 당연시한다.

반대로 부모가 아이를 위해 지나치게 희생하는 경우에도 아이는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희생자 역할을 자처하는 부모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네가 (건강/행복/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저자는 괄호의 자리에 들어가는 기대들이 사실 도달하기 어렵거나 그 기준이 모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려운 목표를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여기게 하는 부모의 말은 자녀가 반복적인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너 때문에 (불행한데도 참고) 산다”는 말도 자녀에게는 자신이 부모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심어 줄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성격의 일부가 되는 강박적 배려와 타인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리는 어느 정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만물의 관계는 (…)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피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피해와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조차 민폐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오랜 시간 다져진 사고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깊이 있는 관계 형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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