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도련님’ ‘아가씨’?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도련님’ ‘아가씨’?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9.01 06: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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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형제 차남인 동갑과 결혼했다. 신랑 형이 한 살 많은데 여덟 살 어린 사람과 결혼하여 나보다 일곱 살 어린 사람이 ‘형님’이 됐다. 반면 언니는 내 신랑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데도 신랑은 내 언니한테 ‘처형’이라고만 부른다”

#2. “시댁의 ‘형님’은 두 살 어린 대학교 같은 과 후배.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후배를 형님이라 부르는 것도 어색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형님이 말을 놓더라. 시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셨다지만, 은연중에 깍듯이 윗사람 대접을 받으려 한다. 차라리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시댁 모임 있을 때마다 형님과는 마주치거나 말 섞기 싫어서 피한다. 단지 여자라서 모든 걸 참고 견뎌야 한다니 너무 억울하다.”

#3. “나이가 어리든 많든, 친하든 아니든 시동생에게 ‘도련님’이라는 극존칭을 써야 한다. 이 말은 사극의 종년이 쓰던 말로, 시댁 식구가 모두 상전이라는 뜻이다. 일방적으로 이런 호칭을 쓰게 하면 자연스레 존댓말도 하게 된다. 약간 거리를 두고 존중해준다는 의미에서 존댓말을 할 수도 있겠으나, ‘도련님’이라는 호칭이 존대를 강요하는 한, 존대도 하기 싫어질 것 같다.”

이는 책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에 나오는 사연 중 일부이다. 책이 밝혔듯이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날에 여성들이 가족간 호칭 때문에 곤란한 상황을 겪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남편은 아내의 형제‧자매를 편하게 부를 수 있지만, 반대로 아내는 남편의 가족을 깍듯하게 불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데에는 우리의 호칭 속에 ‘여필종부’로 대표되는 구시대적인 문화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며느리’는 ‘며늘/미늘/마늘+아이’의 구조로 이뤄진 단어인데, 여기서 며늘이란 말은 ‘덧붙어 기생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또한 ‘올케’는 ‘오라비(오빠나 남동생을 이르는 말)의 겨집(계집의 옛말)’의 준말로, 오라비의 집에서 시집살이를 하고 시중을 들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이미 언어 속에서 남자의 가족은 여성을 낮잡아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이런 의미를 알고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단어에 전제된 문화는 앞서의 예시처럼 여성이 남편의 가족을 높여 불러야 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동안 국립국어원과 여성가족부는 가족간 불평등한 언어 문화를 바꾸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국립국어원은 2020년 발간한 안내서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에서 “남편의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 나에게도 동생인 셈인데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로 높여 부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며 “이럴 때에는 자녀와의 관계에 기대어 ‘OO(자녀 이름) 삼촌’, ‘OO 고모’로 부르는 방법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여성가족부는 2019년 토론회에서 전통적인 호칭법 대신 ‘OO씨’로 통칭해 사용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새로운 호칭을 통해 평등한 가족 문화를 만들자는 논의는 몇 년 째 나오고 있지만, 제대로 정착되지는 않은 상황. 올 추석부터는 가족간 호칭을 보다 편하게 바꿔 성평등한 가족 문화를 만들어 보자. 그러려면 아무래도 시댁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좋지 않을까.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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