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는 왜 사진을 창고에 처박아 뒀을까
비비안 마이어는 왜 사진을 창고에 처박아 뒀을까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8.3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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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의 시그니처인 롤라이플렉스를 든 자화상. 뉴욕, 1954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사진=북하우스]

평생을 그저 보모로 살다, 창고에 방치됐던 14만장의 사진이 공개되며 사후에야 유명세를 떨친 위대한 사진작가. 20세기 미국의 거리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의 삶은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현재 서울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고 있는 가운데, 최초의 공식 전기가 출간됐다. 『비비안 마이어: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북하우스).

경매에 넘어갔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우연히 습득한 존 말루프가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던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그 비밀스러운 생애를 좇는 야심찬 시도였지만, 정작 가장 핵심적인 질문들에는 정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이렇게 뛰어난 사진 실력을 가졌는데 어째서 직업 사진작가가 되지 않았는지, 왜 찍은 사진 대부분을 때로는 현상조차 하지 않고 창고에 버려두듯 방치했는지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저자 앤 마크스는 영화를 접한 뒤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로 결심하고 그의 생애를 추적하던 중 전기 집필 의뢰를 받아,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아카이브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사진과 함께 창고에서 발견된 잡다한 유품과 사진 속에 찍힌 사람들의 모습 등을 단서로 수년간 추적을 이어간 끝에, 지금껏 누구도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했던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그는 왜 무명으로 살아야 했을까?

사람들은 흔히 입주 보모로 일하며 떠돌아다녔고, 극히 제한된 인간관계만 맺었으며, 말년에는 창고 비용을 지불할 경제적 능력조차 없었던 그의 삶을 비극적으로 바라본다. 이 책에서 공개된 그의 불행한 유년기는 일견 그런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듯하다. 그의 가정사는 복잡한 혼외 관계와 중혼, 방임, 약물 중독 등으로 얼룩져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훗날 고용주에게 자신은 어머니에게 한 번도 제대로 돌봄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두운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기로 결정한 비비안 마이어는 “과거를 빼앗긴 사람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게 되는 것 같다”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젊은 시절에는 진지하게 사진작가가 되고자 하는 열정도 있었지만, 서른 살 즈음까지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자 사진 커뮤니티에 발을 들이거나 사진을 판매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여기에 심한 저장 장애로 인해 사진을 세상에 공개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정리되지 않은 채 창고에 쌓여 있던 필름과 사진들은 그의 저장 장애를 암시한다. 저장 장애란 물건을 버리기 어려워하고 강박적으로 모으는 정신질환이다. 책에 따르면 그처럼 어린 시절 좌절과 분열을 경험한 사람은 감정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사람이 아닌 물건에 집착하게 될 수 있다. 소유의 감각이 정체성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80년대 초반까지 비비안 마이어는 8톤에 달하는 신문과 책, 사진 관련 물품을 보관할 창고를 빌리기 위해 모은 돈을 모두 써 버렸다고 한다. 이후로도 수집벽은 점점 심해져, 저장 장애 때문에 해고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저장 장애가 사회적 고립을 낳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저장 장애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6개월간의 세계 여행을 마무리하며 자신의 고향인 뉴욕의 늦여름을 사진으로 담았다. 센트럴파크 동물원, 뉴욕, 1959년 9월 26일.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사진=북하우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제대로 교류하지 못했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인간애와 유머, 아름다움이 가득한 사진을 일생에 걸쳐 찍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외로웠을지언정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았다. 세계 여행을 떠난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1퍼센트가 되지 않던 시절 여자의 몸으로 혼자 세계 여행을 했고, 대부분의 날들을 사진을 찍으며 활기차게 보냈다. 저자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비비안도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말한다. 사진은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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