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가족과 함께?’ 우리의 ‘가족’엔 문제가 많다
‘명절은 가족과 함께?’ 우리의 ‘가족’엔 문제가 많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8.2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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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과거에는 설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이면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당연했지만, 팬데믹을 겪으며 명절 문화도 크게 달라졌다. 명절 특유의 도로 정체와 강도 높은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일단 하고 나니, 코로나가 종식돼도 그런 문화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게다가 가족의 형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비친족 가구원(친족이 아닌 애인, 친구 등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런 시대, 우리는 ‘가족’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야 할까.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책 『이상한 정상가족』(동아시아)에서, 우리 사회가 각박해진 이유는 흔히 지목되는 가족의 해체나 개인주의 때문이 아니라 가족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가가 시대적 필요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직한 가족상’을 내세우며 가족주의 강화를 조장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핵가족은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한국은 전근대에도 부부 중심의 핵가족이 가장 보편적이었는데, 대가족 유지에 필요한 경제력을 갖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제 발전 과정에서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국가는 새삼 핵가족을 찬양하며 농촌 젊은이들의 도시 이주를 장려했다. 그러다 산업화 이후 노인 부양 문제가 부상하자 이번에는 핵가족을 비판하고 전통적 가족 부양의 윤리를 찬양했다. 두 사례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가 사회 문제의 원인을 가족에 전가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저자는 그렇게 근대의 전 과정에 걸쳐 개인이 아닌 가족이 한국 사회의 경쟁단위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한다. “해방과 한국전쟁, 급격한 산업화 등으로 사회가 극심하게 변화하는 와중에 사회적 안전망이라곤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개인을 보호하는 유일한 안전망은 혈연 및 직계가족뿐”이었기에, “가족이 친밀한 사적 생활영역이라기보다 거의 공적 영역을 뒷받침하는 준(準)공적 성격을 갖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소득 보장, 교육, 돌봄 등의 문제를 가족에게 의존할 경우 계층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달라져 양극화가 심화된다.

책에서는 “사회정책이 가족 단위로 설계되는 방식이 지속되면 가족을 형성치 못한 개인, 가족에게서 충실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개인에게는 사회가 또다시 불이익을 가하는 셈이 된다”고 말한다. 현재의 가족 정책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인 ‘정상가족’의 범주를 벗어나는 사람들을 아우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비혼 동거 가족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50.5%가 “주거지원 제도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 있다”고 대답했다.

저자의 말처럼, “가족의 형태가 급변하는 현실과 달리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에는 여전히 가족주의와 그것의 강력한 작동방식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배타적 가족주의와 뿌리깊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차별과 혐오를 낳으며 우리 삶을 점점 더 팍팍하게 만든다. 사회 문제로 떠오른 저출생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존중하고, 가족의 울타리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우리의 명절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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