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공정’에는 ‘00’이 빠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정’에는 ‘00’이 빠졌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8.1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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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지난 27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울릉도로 떠나는 모습. 그가 생각하는 정치의 역할은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사진=연합뉴스]

‘공정(公正)’은 근 몇 년간 한국을 지배해 온 시대정신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서 공정에 대한 요구와 기대가 상당히 큰 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되고,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자랑했던 문재인 정부가 자멸한 배경에는 모두 ‘공정’에 대한 결여가 있었다. “부모를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고 말한 정유라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대학 입학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정’의 가치는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더 이상 반칙과 기회주의로 인해 노력의 가치를 믿고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외쳤다.

청년 정치인 이준석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책 『공정한 경쟁』에서 중학생 시절을 회고하며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진 무한 경쟁”, 그것이 바로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정치의 역할은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경쟁이라는 단어가 조금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공정하게 판이 짜인 레이스라면 특혜를 받은 누군가의 소식으로 실망할 일도 없었다. 청년들은 청년 정치인의 솔직하고도 도발적인 공정론에서 새로운 희망을 봤다.

그의 공정론이 구현됐을 때의 사회는 언뜻 보면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성적순으로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는 시험에서는 오직 자신의 실력만 갈고닦으면 된다. 또한 경쟁이 있는 곳에 시험을 도입하고 철저히 관리한다면, 그전까지 사람을 뽑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했던 특혜 논란도 더 이상 탄생하지 않을 수 있다. 즉, 내 부모를 탓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부단한 노력으로 실력을 키우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결국, 공정은 누군가의 노력이 부당하게 배신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면에서 매력적인 가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공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능력만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정론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할당제’가 불공정한 제도로 여겨진다. 할당제가 없었다면 그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 담론이 확산된 후에는 ‘할당제가 되레 역차별을 불러일으킨다’는 남성과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 간의 젠더 갈등으로도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타자를 향한 혐오 정서로 이어졌는데,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의 저자 김학준은 소셜 커뮤니티에 게시된 혐오 표현이 ‘공정’과 ‘능력주의’의 탈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구 하나 억울한 사람 없게 하자는 공정이 그 의도와는 다르게 폭력의 수단이 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공정 그 자체에 있었던 걸까. 전문가와 학자들은 한국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공정의 의미가 비뚤어져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공정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불만이나 울분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필수적 가치이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정은 완벽한 경쟁과 노력만을 강조한 나머지 사회적 환경으로 인한 개인의 불행은 쉽게 외면한다는 것이다. 가령, 입시에서 서울 대치동 학생들과 비수도권 학생의 학습 환경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도, 오로지 개인의 실력만을 강조하는 현재의 공정 담론은 그들의 경쟁 조건에 대해서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지역 균형 선발 제도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을 ‘지균충(지역 균형 선발과 벌레를 뜻하는 한자 ‘충’의 합성어)’이라고 부르며 배제하는 것은 하나의 예다.

책 『공정 이후의 세계』의 저자 김정희원은 “현재 공정에 관한 담론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의 대화 기회를 차단해왔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상대방의 반론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무기화된다”며 그 폐해를 지적한다. 그렇다면 시대정신이 된 ‘공정’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가치가 과연 존재하긴 하는가.

저자는 “우리가 사회를 운영하는 기초 원리로서 정의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돌봄의 가치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의와 돌봄은 우리의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필수 기둥”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돌봄에 대해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다른 이를 돌보자”는 봉사의 마음가짐으로 여겨지지만, 그보다는 “인간, 관계, 사회에 대한 대안 개념을 제시하고자 하는 원대한 기획”이라고 치켜세운다.

그에 따르면 지금의 공정 담론은 ‘개별주의적 존재론’ 위에 서 있지만, 돌봄의 개념은 ‘관계론적 존재론’에 기반해 있다. 쉽게 말해서 돌봄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정과는 상반된 관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저자는 “관계적 존재론을 기반으로 할 때 삶의 방식을 사유한다면 삶의 원리 역시 달라질 것”이라며 “사회의 부정의를 지적할 때 그 기준이 내가 아니라 공동체가 된다”고 말한다.

돌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코로나19를 거치며 돌봄의 가치를 체험하고 있다. 우리가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킨 이유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으나,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팬데믹 속에서 생명과 공동체를 지키는 간호사와 노인 요양사 등 돌봄 노동의 중요성을 느꼈다. 재난, 감염병,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해 ‘돌봄’의 가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결정하자는 ‘능력주의’와 같은 말이 됐다. 출신과 지위로 인해 누군가의 능력이 외면돼서는 안 된다는 요구는 분명 시대적이지만, 공정이 그리고 있는 이상향은 결국 각자도생의 사회다. 사회적 존재로 태어난 인간에게 ‘돌봄’은 나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돌아보라고 전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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