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지난 현대수필문학 1세기 동안 "수필도 문학이냐"는 말을 들어온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삼가 이 땅의 모든 수필 사랑 문우님들께 부족한 책을 드립니다."
위 글은 근래 '창작수필'의 이론과 중요성을 줄기차게 제기해 온 중견수필가 이관희 씨가 『창작문예수필이론서』(청어刊)를 신간으로 내면서 책의 머리에 적어놓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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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저자는 이 책을 "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 문예수필을 서양의 '에세이'가 이 땅에 들어온 후 자생적 창작문예수필로 진화 발전한 제3의 신종 창작문학 양식으로 보는 관점에서 저술한 최초의 창작문예수필이론서"라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 우리 문단의 많은 수필가들 중 수필평론이나 수필이론을 쓴 이는 흔치 않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저자는 유별나게 '창작'이란 개념과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 주장과 논지가 하도 강하여 말뚝이나 굴착기처럼 저돌적으로 땅 속을 깊이 파들어가는 모습이다.
220여 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제1장 '서론', 제2장 '본론', 제3장 '결론', 제4장 '작품연구' 등으로 대별하면서 창작수필 이론을 단계별로 펼쳐나가고 있다. 내용 중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서론의 '창작문예수필 이론의 정립을 서둘러야 되는 이유'인데, '에세이 문학을 살리기 위해서'라거나 '창작문예수필을 세우기 위해서'가 그 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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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서도 독특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선언, 대한민국 自生 문예수필은 제3의 新種 창작문학'이라는 사실인데, 여기서 특기할 점은 '자생'은 무엇이고 '신종'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 표현의 의미를 서술하는 저자의 논지를 읽다보면 상당 부분 공감 되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 대목 역시 어떤 형태로든 문인들간엔 토론과 회자의 대상이 될 법한 꺼리로 생각된다. 일부든 대다수든······
저자는 책의 후기에서 주장한다. "본서는 우리 수필문학을 서양의 '에세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자생적 '창작문예수필'로 진화 발전 되어 온 제3의 신종 창작문학 양식으로 보는 관점에서 저술된 현대수필문학사상 최초의 순수창작 문예수필 이론서"라고도······. 이 대목 역시 수필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관심을 갖고 검토, 고찰해 볼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우리 수필문학계에서 저자의 경우처럼 수필 '창작'론에 대해 소위 '아집'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한 연구와 이론정립을 시도한 작가가 있다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사실이다. 수필이론에 대한 연구과정면에서의 창작적 접근과 열정이야말로 분명 높이 평가받아 마땅할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창작적 의미의 수필 대표작으로써 최남선의 <가을>, 방정환의 <어린이 예찬>, 이양하의 <나무>, 한흑구의 <보리>, 이관희(본서 저자)의 <나팔꽃> 등을 선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들 작품이 왜 그에 해당하는 작품인지는 독자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 저자는 나름대로 대목 대목별로 세세히 그 이론적 논지를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특히, 오랫동안 우리 수필의 일반적 개념으로 자리해 온,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거나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임을 정면으로 뒤집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즉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며 '수필은 유형식의 문학'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물론 지금까지 모든 수필 이론가들이 전자에 대해서만 찬동하거나 후자에 대해서는 부정으로만 일관 한 것도 아니다. 학자들마다 그 주장을 조금씩 달리했을 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나름대로의 이론에 입각한 주장과 획을 보다 선명하게 긋고 있다.
이 책에는 지금껏 국내외 수필문학사상 여러 작가들이 펼쳐온 수필이론적 고찰 또는 주장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수필을 공부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기성 수필가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수필 이론 또는 지침서일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이 책이야말로 수필문학 창작이론의 금자탑으로 칭하여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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