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쉬쉬하는 죽음 이야기, 이제는 솔직해지자
모두가 쉬쉬하는 죽음 이야기, 이제는 솔직해지자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8.0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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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있잖아... 만약에 엄마가 나중에 많이 아프면…”
“에잇, 그런 말 마세요!”
“…”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가족 간의 대화에서 좀처럼 꺼내기 어렵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화목하던 집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고 만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이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계획인지 감히 묻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 죽음이 점점 현실로 다가올수록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노년기의 몸은 더욱 더 빠르게 기능을 상실해가며, 나아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노년을 보내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때 생사의 문제는 본인이 아닌 가족이나 형제‧자매 등 타인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로 바뀌어 버린다. 소중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과 가족의 죽음을 대비하는 개인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30년간 노인의학 전문의로 일하며 오랜 시간 노인들을 지켜봐온 루시 폴록은 책 『오십부터 시작하는 나이 공부』에서 우리 모두에게 죽음에 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눌 것을 당부한다. 그는 대화의 부재가 노년을 낙관적으로 인식하고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방해물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이런 대화를 나눠야할 때”이며 그것은 “희망과 두려움을 이야기할 기회이자, 진솔함과 친절함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경험이 담긴 이 책은 노년과 죽음에 관한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전해준다. 망가진 몸으로 잠자리에 들면서 그대로 아침에 깨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 없는 소생술을 고집하며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의료진의 당부에도 시도를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 죽음에 관한 대화를 너무 금기시한 나머지 그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일이다.

특히, 가족이 치매에 걸린 경우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책에 따르면 낸시와 클렘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부부였으나, 클렘이 치매 환자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클렘은 낸시가 뜬금없이 불륜을 저질렀다며 윽박질렀고, 심지어는 낸시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낸시는 저자에게 그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이가 죽기를 간절하게 바라요”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만약 낸시와 클렘에게 조금 더 시간이 있어서 솔직한 대화를 나눴더라면, 누군가 치매를 앓게 됐을 때 병원에 맡겨달라고 솔직하게 얘기 나누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흔히 가족들은 노년의 말로와 죽음에 대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못하겠어”라고 말하며 상황을 회피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랑하기에 그런 이야기를 할 거야’라고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노년과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하고 진솔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 우리들의 조부모나 부모님 등 나이든 누군가가 죽음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런 말 마세요” 대신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지 귀기울여 들어보자.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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