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 낸 최유혜
첫 소설집 낸 최유혜
  • 관리자
  • 승인 2006.06.0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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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사회의 명암을 사실적으로 그려

▲ 최유혜 작가


평범을 벗어난 색다른 이미지
 우리가 사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 받는 느낌은 상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히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외모에 따라 우리가 받아들이는 감정은 똑 같을 수 없다. 그것은 때로는 선입견에 의한 경우도 있으며 상대에게서 풍기는 독특한 이미지에 의해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만큼 첫인상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유혜 작가의 첫 이미지는 여성적인 면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미국이라는 낯선 타향에서 험난한 풍파를 헤쳐 나가는 억척스런 모습, 그래서 보다 완고하고 단단해 보일 것만 같은 이미지가 아닌 우리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가여운 전통적인 한국여인의 모습이었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의 이미지를 가진 최유혜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 소설을 쓰는 작가란 이야기만 들었지 막상 어떤 작품을 썼으며 어떠한 경향의 작품을 쓰고 있는지 사전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대충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 최유혜 작가의 『낯선 땅에서 만난 소나기』란 소설집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소설집을 읽고 난후 그에 대한 이미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의 소설집에 실린 10편의 중단편들은 그 제목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독특함과 진솔함, 그리고 다른 재미작가들과는 다르게 그 소재의 다양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작가답지 않게 노골적으로 성문제를 주제에 다가가는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 생각한 여성의 이미지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독특한 소재와 관찰력
 그의 작품들은 독특한 소재와 관찰력이 돋보인다. 그러한 독특함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어 진행된다. 하나는 그 배경이 비록 미국임에도 한국의 어느 한곳을 대상으로 해도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성형수술에 미친 한 재미동포의 이야기를 다룬 <등 뒤의 그림자>는 서울 어느 지역이라도 능히 통할만큼 지역성을 벗어난 작품이다.

 <그 남자 이름도 모르면서>는 아버지가 타계한 뒤 재혼한 어머니와의 만남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글에서 주인공 어머니는 치매가 심해져 의사인 주인공이 모시게 됐는데 모신 병원에서 가까이 지내던 정노인과의 이야기를 마치 청춘연가의 주인공처럼 안타깝게 그리고 있다.

 <연구회>는 바이올리니스트 여주인공 ‘나’를 중심축에 놓고 음대 동창들과 미국 교민사회란 이중적인 인연으로 얽힌 등장인물을 통하여 결혼생활의 허망함을 파헤친 작품인데 이 역시 그 소재를 미국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의 어느 한 곳을 그 대상으로 해도 무난하다.

 반면 이들 작품들과는 반대로 미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재미동포들의 삶의 이야기로는 <마라톤> <콘돔> <황구> <사랑 사랑 사랑>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라톤>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 부도로 가진 재산을 날리고 미국으로 이민 왔다는 설정에서 시작되는 재미동포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건의 유형을 띄고 있다.

 또 <콘돔>은 ‘마사지 팔러’에서 윤락행위로 생활을 유지하는 주인공이 경찰의 단속 때 꿀꺽한 콘돔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인사차 들린 팔러에서 경찰과 마딱뜨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도 하기 전에 다시 굴레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재미 교포 여성의 비극을 희화화하여 다루고 있다.

 <황구>는 다민족사회인 미국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인이 다른 유색 인종을 보는 편견과 미국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한인이 흑인들을 바라보는 편견을 절묘하게 대치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인종차별적인 편견을 중간에 진돗개와 서양종을 등장시켜 평등주의에 대한 소설적 장치를 마련한 것도 잊지 않고 있다.

▲ 최유혜 작가의 신작


낯선 땅에서 만난 소나기
 <낯선 땅에서 만난 소나기>는 뭐라 단정 짓기가 참 곤혹스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분명히 굴곡 많은 어머니의 삶과 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것 같은데 여기에는 묘한 여운이 남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식을 버린 어머니를 만나면서 비롯된다. 버림받은 비운의 주인공은 그러한 삶을 대물림하기 싫어 결혼도 하지 않고 입양을 통해 가정을 꾸려가면서 생활해 나간다. 그러다 자신을 버린 생모와 자신의 존재도 모르는 생부를 만나러 미국으로 가게 된다.

 미국에서 친부모와 어울리게 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심리적인 갈등을 작가는 섬세하고 차근하게 풀어낸다. 그러한 갈등 구조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하지만 이글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점은 바로 버림받은 자식의 한과 자식을 떠나버린 부모의 아픔이 너무나 쉽게 좋은 방향으로 결론난다는 점이다.

 통속소설의 대부분은 이러한 화해는 서로간의 공감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작품에서 이러한 공감대의 배경에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아버지의 뉘우침이다. 하지만 25년 만에 만난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너무 쉽게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는 자식대의 부모에 대한 이해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 않나 추측된다.
 
최유혜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작가 최유혜의 삶은 치열하다. 또한 본인 스스로 욕심이 많다 한다. 미술을 전공한 화가요 한의사이기도 한점이 바로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도 소설가임을 가장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당당한 한국문인협회(이하 문협) 회원이다. 문협은 한국에서의 등단이 아니면 입회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문협가입을 원했고 문단에 도전장을 던지고 당당히 문협 회원이 되었다.

 물론 작가 최유혜의 작품에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시대의 산물이며 작가의 상상력의 표상이다. 그러한 점에서 재미사회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작가의 시대정신의 산물이며 상상력의 표출이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가 너무 기성세대에 집중돼 있는 점은 한번 생각해 봐야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은 작품의 신선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특정 계층이나 젊은 세대가 접근하기 힘들다. 생명력이 긴 작품들은 특정 세대나 계층을 떠나 모두가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풍선’이라는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라는 작가 최유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낯선 이국 타향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러한 역설을 긍정으로 바꾸는 그의 부단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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