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용의 출현’, 책이 말하는 ‘한산도 대첩’ 이모저모
‘한산: 용의 출현’, 책이 말하는 ‘한산도 대첩’ 이모저모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7.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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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묘사되는 '한산도 대첩' 장면 [사진=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오는 27일 개봉하는 <한산: 용의 출현>은 지난 2014년 국내 관객 1,700만 명을 모았던 <명량>의 후속편이다. 과거 <명량>이 13척의 배로 왜선 330척을 패퇴시킨 기적을 보여줬다면, <한산: 용의 출현>은 이순신이 ‘학익진 전법’을 통해 적군을 전멸시키는 시원한 액션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볼 때 학익진의 화려함과 액션 장면에 너무나도 심취한 나머지 다른 볼거리들은 놓치기 쉽다. 사실 한산도 대첩에는 ‘학익진’ 외에도 많은 뒷이야기들이 숨어 있는데 말이다. 아는 것이 많으면 보이는 것도 많은 법. 국내 출간된 이순신에 관한 책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재밌게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보자.

■ 한산도 대첩이 중요했던 이유

한산도 대첩은 이순신이 이전에 치렀던 옥포‧사천포‧당항포 등의 해전과는 전투의 규모가 달랐다. 연이은 패배를 경험한 왜군이 처음으로 연합군을 결성해 전면전을 치른 전투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군이 이순신에게 계속 패한다는 보고를 받자 연합 함대를 결성해 이순신을 공격하라고 했는데, 당시 왜군 중 활약이 뛰어났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선봉에 섰다. 이때 왜군의 선봉장 와키자카와의 전투를 우리는 ‘한산도 대첩’이라고 부른다.

와키자카는 자신감이 넘치는 장수였기 때문에 후방의 지원을 받지 않고 단독으로 전투에 임하려 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 조선 수군은 일부러 와키자카의 함대를 유인한 뒤,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 전법으로 적을 에워싸며 화포 사격을 가했다. 그 결과, 와키자카의 함대는 불과 2~3시간 만에 궤멸했고 병력 1만 명 중 90%를 잃었다. 반면, 조선 수군의 사망자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이 소식을 들은 왜군은 다시는 바다로 나갈 용기를 내지 못했으며, 당연히 한성(서울)에 주둔해 있던 일본 육군에게 해상으로 물자를 조달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이순신역사연구회는 책 『이순신과 임진왜란1』에서 “일본 수륙의 맹장 와키자카 야스하루 함대와 맞붙은 한산도 해전은 임진왜란의 판세를 뒤바꿔 놓는 분수령이 되었고, ‘세계 해전사의 신화’로 전해져 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 시대를 앞서간 전투 방식

간혹 이순신을 다룬 드라마에서 한산도 대첩에 백병전(칼이나 창을 가지고 적군과 몸으로 맞붙는 전투)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실 한산도 대첩에 백병전은 없었다. 당시 왜군이 사용했던 선박은 빠른 속도를 자랑했는데, 조총을 발사하면서 적선 가까이 붙은 다음 월선해 백병전을 벌이는 방식으로 싸웠지만, 이순신은 왜선으로부터 철저히 떨어져서 화포 사격만을 했다. 이순신이 승전 후 장계를 올린 ‘견내량파왜병장’에 따르면 “순천 부사 권준이 제 몸을 잊고 돌진하여…”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순신역사연구회는 이를 백병전이 아닌 “왜군들이 불타는 전선을 내버리고 도망치자 자신의 병력으로 하여금 왜선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여 소탕전을 전개한 것”으로 이해하길 당부한다.

<한산: 용의 출현> 속 왜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 분)

다소 시시한 전투처럼 보일지 몰라도, 역사적 의미는 상당하다. 이순신역사연구회는 “세계 해전사를 보면, 16세기는 물론 18세기에 이르기까지 해전 초반에는 대포를 쏘고 중반과 후반에는 적선에 갈고리 등을 걸어 끌어당겨서 타넘은 후에 백병전으로 끝장을 보는 접현전 방식이 주종을 이루었다”며 “그런데 이순신은 이미 현대식 해전을 방불케하는 함포전만으로 해전을 치렀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일본군의 돌격전과 백병전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때는 물론 태평양전쟁 때까지도 상대방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며 “그러나 이순신은 중세의 신통치 않은 총포류를 가지고 일본군의 돌격전과 백병전을 철저하게 따돌렸다”고 덧붙인다.

■ 일본인은 이순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이는 이순신과 대적했던 장수 와키자카가 훗날 이순신에 대해 남긴 평이다. 와키자카 뿐만 아니라 후대의 일본 군사가들도 조상의 야망을 꺾은 이순신을 추앙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해군은 매년 통영에 있는 이순신 사당을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일본의 작가 시바 료타로는 저서에서 이순신을 두고 “병사를 거느리는 재능과 전술 능력, 그리고 충성심과 용기를 볼 때 실존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인의 이순신 존경 때문에 러일전쟁 때 운용된 도고 헤이치로의 정(丁)자 진법을 두고 ‘학익진’을 응용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책 『일본인과 이순신』에 따르면 이는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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