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퀴어’의 역사
당신이 모르는 ‘퀴어’의 역사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7.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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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퀴어(성소수자)들의 최대 행사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오늘부터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가운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2년간 중단됐던 ‘서울퀴어퍼레이드’가 16일 개최된다. 퍼레이드에는 약 2만명의 시민이 참석할 것으로 전망됐다.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모든 인원이 ‘퀴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현장을 메운 무지갯빛 인파를 보고 있자면 ‘다들 어디에 있었던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상 속에서는 그토록 당당한 퀴어들의 모습을 자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책 『퀴어의 세계사』는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책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을 이성애자로, 또 시스젠더(Cisgender, 생물학적 정체성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로 간주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퀴어는 모든 대륙에서 어느 시대나 역사의 일부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짚으며 시작한다. 책에 따르면, 퀴어를 나타내는 단어나 개념 대부분은 생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가령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단어는 1869년에야 생겨났다. 그 전에는 동성애자가 없었다는 뜻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먼 옛날에도 퀴어들은 우리 안에 존재했다.

퀴어에 대한 수용도는 문화권마다 차이가 컸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부기족은 성별을 두 가지가 아닌 다섯 가지로 인정했고, 그 개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런 사례가 소수의 예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며 “유럽 기독교 식민주의자들이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지구 곳곳을 정복하면서 다양성과 관용을 베푸는 게 훨씬 어려워지고 말았다. 모든 지역에서 젠더와 섹스를 규정하는 방식이 순식간에 단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류 가치관이 바뀌고 있는 현재, “전 세계의 퀴어 이야기는 매일 다시 쓰이고 있다”. 

책에 소개된 퀴어 인물의 역사는 먼 옛날,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23대 황제였던 엘라가발루스(203~222)는 스스로를 여자라고 부르며 화려한 여자 옷을 입고 다녔고, 약 4년의 재위 기간 동안 다섯 명의 여성, 두 명의 남성과 결혼했다. 또한 궁전을 사창가처럼 꾸며 놓고 남자들을 유혹해 침실로 끌어들이는 역할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에게 여성 성기를 만드는 수술을 해 주는 의사에게 막대한 사례금을 주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저자는 그를 “기독교 사상이 세계를 지배하기 직전 시대에 (…) 격렬한 ‘퀴어성(Queerness)’이 있었다는 걸 로마인들에게 똑똑히 보여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1912~1954)은 동성애가 법으로 금지돼 있던 과거 영국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주변에 성적 지향을 드러내며 살던 게이였다. 1952년 그는 집에 강도가 들어 신고했다가 동성 성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체포됐다. 군사 암호 해독을 통해 영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에 일조한 그였지만, 범죄자로 분류되면서 다시는 정부 기관에서 암호 해독을 할 수 없었다. 화학적 거세까지 당한 앨런 튜링은 1954년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으며 2013년에 이르러서야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식 사면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이자 유엔인권이사회 의장으로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성에 참여한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는 남편이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운명의 여성을 만나게 된다. 미래의 영부인을 취재하러 온 AP 통신의 레즈비언 기자 로레나 히콕. 두 사람은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항상 사랑한다는 문구로 편지를 끝맺었다. 엘리너가 세상을 떠난 뒤 로레나는 편지들 중 수백 통을 태워 버렸는데, 태우고 남은 분량이 무려 1만6,000장이었다고 한다. 

방송인 홍석천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 책을 통해 개인적인 범위의 시야와 견해가 아닌 전체 역사를 통해 인간의 다양성을 한번 들여다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책은 퀴어의 세계사가 그들만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에서 그 동안 어둠에 싸여 있던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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