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악의 가뭄으로 전국이 신음하는 가운데 공연 때마다 물 300톤을 사용한다는 가수 싸이의 콘서트 ‘흠뻑쇼’를 두고 각종 설왕설래가 벌어졌다. 그 물을 농업용수로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래 봤자 가뭄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있다.
과열되어가는 일련의 논쟁 속에 정작 핵심이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흠뻑쇼’를 하느냐 마느냐, 300톤의 물을 농업용수로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농촌에는 재난이나 다름없었던 이번 가뭄을 많은 사람들이 먼 나라 일처럼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떤 국가보다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인류를 1만년 동안 먹여 살린 농업은 계속 뒷전으로만 밀려났고, 그 결과 농촌에는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의 씨가 말랐다. 그나마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니면 우리 농업은 현상 유지조차 어려운 판국이다.
옛말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농사 짓는 일이 천하의 근본을 이룬다는 뜻이다. 의식주 중 가장 중요한 식(食)을 책임지는 농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경제학 박사 김성수는 책 『농업이 미래다』를 통해 서서히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성장의 반등을 위해 그동안 돌보지 못한 경제 분야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바로 농업이다. 세계 3대 투자가 짐 로저스도 농산업을 미래의 유망 산업이라 역설한 바 있다.
책에서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농산업을 이제부터라도 부흥시키면, 큰 발전을 맛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농업을 꽃피울 경제 환경과 산업 인프라가 충분히 마련됐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는 등 농업에 대한 인식부터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SF 소설 『마션』의 주인공은 식물학자였다. 아무것도 없는 행성에 홀로 떨어져 살아남으려면 일단 농사를 지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농업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공상과학 소설에서는 인물들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다. 인류가 지구 종말과 같은 극단적인 위기에 처하면 결국 농업을 찾게 돼 있다. 끝과 시작은 통한다고 했던가.
다행히도 곧 장마가 시작되면서 가뭄이 해소될 전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가뭄의 원인으로 지목된 ‘라니냐 현상’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잦아진다면 이런 가뭄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식량난과 기후 위기의 시대, 농업에 국가적인 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농업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된다면 ‘흠뻑쇼’와 같은 논란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