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는 왜 열렸나?
판도라의 상자는 왜 열렸나?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6.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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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신화 속 인물들은 배우자가 아닌 상대와 바람을 피고는 정작 그 배우자를 죽이는 치정극을 벌이기도 하고, 자신의 욕망을 추스르지 못해서 여러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참담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신화 속 이야기를 반면교사 삼아 어리석거나 잘못된 짓에 대한 경각심을 갖곤 한다. 하지만 어쩐지 신화 속 여성들이 대개 악당이나 어리석은 인간으로만 묘사되는데, 그것은 과연 사실일까.

책 『판도라는 죄가 없다』의 저자 나탈리 헤인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여성에 대한 낡은 시선을 불러내어 비판한다. 그는 “학위 과정을 통해 고대 여러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책이나 영화로 접했던 단순화된 이야기와는 상당히 다른 세부적인 내용이 있음을 알게되었다”고 말하며,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 여성들의 모습이 원작자의 묘사와는 다르게 와전됐다고 이야기한다.

판도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신화 속 최고의 신 제우스가 판도라를 만들어 특별한 상자와 함께 인간 세상에 내려보내며 “그 상자를 열지 말라”고 명령한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는 상자를 열게 되고, 그 순간 안에 있던 온갖 재앙이나 불행이 빠져나와 인간을 괴롭힌다. 이같은 판도라에 대한 묘사는 머릿속에 오랫동안 각인돼 유혹을 못 이기고 금기를 깬 여성들을 보며 “저건 여자들의 본성이야,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잖아”라고 비난할 수 있게끔 만든다.

하지만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판도라가 어떤 이유로 상자를 열었는지 알 수 없다. 저자는 “(원작자) 헤시오도스조차 판도라가 왜 항아리를 열고 모든 재앙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녀는 그냥 그렇게 할 뿐이다”며 “우리는 그 행위가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악의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전한다. 그리고 제우스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판도라를 만들었을 뿐 판도라 자체가 사악하다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건 마치 제우스가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누군가에게 내리친 번개에 대해 사악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즉, 판도라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는 말이다.

책은 판도라 외에도 그동안 알려지지 못했던 여성 인물들 9명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순히 악당(클리타임네스트라, 메디이아)이나 괴물(메두사)로만 묘사됐던 여성 인물들의 훨씬 복잡한 사연이 전개된다. 그에 따르면 메두사가 항상 괴물이었던 것도 아니거니와 트로이아의 헬레네 역시 바람을 핀 여성이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를 원전으로 만나는 것은 어렵다. 그 내용을 전해주는 『호메로스』나 『오뒷세이아』, 그리고 헤시오도스의 저작들은 워낙 옛날에 쓰여진 책들이라서 바쁜 현대인이 읽기에는 난해한 텍스트다. 그래서 우리는 만화로 각색되거나 쉽게 풀이된 그리스 신화 책을 찾아 읽는다. 쉽게 만들어진 그리스 신화 도서들은 원작자들이 만든 이야기를 훨씬 간명하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 도서들이 신화 속 여성을 편향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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