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다셴카가 인생의 10일차를 축하하던 아침, 첫 번째 사건이 발발했어요. 잠에서 깨어나니 눈앞이 보이는 바람에 기절초풍한 거예요. 먼저 한쪽 눈만 떴지만, 한 눈만으로도, 굳이 말하자면 세상으로 내딛는 크나큰 한 발이었던 거죠. 다셴카는 기겁해서 깩깩거렸고, 그 기억할 만한 깩 소리로부터 ‘짖기’라 불리는 개의 언어가 처음 시작되었어요. 이제 다셴카는 말은 물론이고 욕도 하고 제법 무섭게 위협할 줄도 안답니다. <51쪽>
다셴카, 왜 개는 누워 잠들기 전에 꼭 세 번 도는지 알고 있니? 스텝에서 살 때는 발밑의 키 큰 풀을 밟아 다져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잠자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야. 팔걸이 의자에서 편히 잘 수 있는 오늘날까지도 개들은 여전히 그러는 거야. 너처럼 말이야.
(…)
그런데 너, 개들이 왜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는지 알아? 그게 이렇게 된 거야. 개들이 무리 지어 사는 걸 보고 인간들도 무리 지어 살기 시작했거든. 그런데 인간의 무리가 동물들을 아주 많이 잡았고, 숙영지 주위에 뼈다귀들이 아주 많이 흩어져 있었어. 그리고 개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말했지. “인간들한테 뼈다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왜 동물들을 쫓아다녀야 해?” 그때부터 개들은 인간 무리와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고 인간과 개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게 되었어.
그래서 이제 개는 개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고 인간 무리의 일원이야. 개가 같이 사는 사람들이 그 개의 무리야. 그래서 개는 자기 이웃처럼 인간을 사랑하는 거야.
그러니 이제 가서 풀밭에서 마음껏 뛰어놀렴. 저기가 너의 스텝이란다. <81~82쪽>
집 안에는 축복과 같은 정적이 깔려 있습니다. 그 빌어먹을 강아지 녀석이 무슨 장난을 치고 해코지를 할지 두려워할 필요가 이젠 없으니까요. 이제 가 버렸다니 정말 얼마나 홀가분한지요! 하지만 불현듯 집안에 죽음처럼 느껴지는 무언가가 깔립니다. 아니, 이게 대체 뭘까요? 사람들은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서로 피합니다. 모퉁이만 보이면 눈길이 절로 가지만 아무것도 없네요. 흥건하게 싸 놓은 오줌 웅덩이 하나 찾아볼 수 없어요. <65쪽>
[정리=김혜경 기자]
『개를 키웠다 그리고 고양이도』
카렐 차페크 지음 | 김선형 옮김 | 민음사 펴냄 | 144쪽 |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