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책이 우리에게 남긴 것
‘마법소녀’ 책이 우리에게 남긴 것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5.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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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마법소녀’를 주제로 한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문화연구서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와 판타지소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크게 유행했던 마법소녀 만화를 보며 자란 소녀들이 어른이 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마법소녀라는 문화현상을 재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는 마법소녀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소녀 문화의 이면을 톺아보는 책이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마법소녀 만화 <세일러 문>은 24세였던 여성 작가를 비롯해 소녀들의 관심과 취향을 잘 알고 있던 다수의 젊은 여성 제작진에 의해 탄생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던 흐름에 발맞춰 소녀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일하고 소비하는 ‘커리어 우먼’을 꿈꾸게 했다. 책은 <세일러 문>이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성 규범이나 가부장적 규범을 비판적인 시각 없이 수용했다는 점을 근본적인 한계로 보고 있다. 

<세일러 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늘씬한 몸매의 미소녀로만 그려지며, 마법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짧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 차림으로 변신해야만 한다. 또한, 중학생인 주인공 세라는 계속해서 자신이 살쪘다고 주장하며 다이어트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성의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정작 여성들의 현실에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문제도 있다. 책에 따르면, <세일러 문>의 제작사는 2019년까지 여성을 TV 시리즈 디렉터로 임명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진 제작진이 <세일러 문>을 성공시킨뒤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그들 중 누구도 회사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책은 ‘세일러 문’이라는 마법소녀의 등장은 파격이었지만, 현실의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억압을 바꿔 놓을 만큼 파격적이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반면,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법소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자리를 잃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카드값을 감당하지 못해 하루하루 암울하게 살아가던 스물아홉 살의 여성이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하던 주인공은 갑작스레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라는 계시를 받고 얼떨떨하게 삶을 이어간다.

주인공의 능력은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 단, 신용카드를 쓰면 카드빚이 생기듯 소원이 이루어지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가벼운 소원을 빌면 머리가 한 움큼 빠지거나 몸이 퉁퉁 붓는 정도의 대가만이 따른다. 하지만 과거의 마법소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구의 운명을 건 싸움에 능력을 사용한다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될지 짐작할 수 없고, 오히려 대가를 치르느라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이런 이유로 ‘마법소녀’를 은퇴하기로 마음먹는다. 대의를 위해 싸운다 해도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소설을 쓴 박서련 작가는 마법 같은 초능력을 발휘해 지구를 지키는 매체 속 영웅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선량한 시민들을 다치게 해 왔다는 사실을 짚는다. “전투를 벌일 때마다 마천루가 무너지고 철도가 끊어지고 폭발이 연쇄된다면, 그게 어떻게 지구를 ‘지킨’ 것이 되는가?” 작가는 “전투가 끝난 자리가 많이 파괴된 쪽보다 적게 파괴된 쪽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그의 소설에서는 ‘소녀스러운’, ‘여성스러운’ 것으로 분류되던 감정적으로 섬세한 기질이 전 인류를 구할 해답으로 제시된다. 요컨대 취약한 존재들을 돌보는 힘이야말로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을 구하지 못한 마법소녀가 우리에게 남긴 깨달음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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