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그립다면…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그립다면…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5.0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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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첫 키스만 50번째>의 주인공 루시는 사고를 당한 뒤 매일 똑같은 날짜 속에 살고 있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다. 그를 사랑하게 된 헨리는 이 사실을 알고 절망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매일 루시를 찾아가 첫 데이트를 반복한다. 첫 키스의 설렘을 계속 느낄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이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첫 키스에 관해서는 상대는 물론 그날의 조명, 온도, 습도까지 기억하지만 50번째 키스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책 『기억의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사건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 남는 추억인 ‘일화기억’이 되고, 그중에서 특히 강렬한 감정을 느꼈던 경험은 몇 년 뒤에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일화기억’을 형성하는 사건들은 대개 15세에서 30세 사이에 모여 있다. 왜일까? 과학자들은 다양한 첫 경험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첫사랑, 첫 대학 생활, 첫 직업, 첫 집, 첫 결혼, 첫 아이… 인생이 새로운 의미로 채워지는 특별한 순간들이다. 이와 달리 감정을 자극하지 못하는 일상적인 기억들은 잘 저장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저장되는 ‘첫 추억’의 양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화기억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앞서 언급한 ‘첫 경험’, 즉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여행을 간다든지, 가구 배치를 바꾼다든지, 꿈에 그리던 자동차를 렌트해 본다든지. 물론 이벤트 속에서만 살 수는 없지만, 저자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확실히 알려고 노력하고 이를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등 반복해서 떠올리다 보면 기억을 간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꾸준히 일기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심리학자 빌렘 바게나르는 6년 넘게 일기를 쓰면서 2,402가지 사건들을 기록했다. 쓰기만 했을 뿐 적은 것을 다시 읽어 보지는 않았는데도, 이후 동료 학자가 그의 기억력을 시험해 본 결과 지난 6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80% 정도 기억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 브이로그 등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저자는 지나치게 화면 속 세상에 몰두해서는 안 되지만, 소셜 미디어를 잘만 활용하면 강력한 기억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날짜별로 이미지와 짧은 감상이 정렬된 인스타그램 피드는 우리의 뇌가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더 정확하게 떠올리도록 돕는다. 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동영상은 일화기억을 강화할 뿐 아니라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기억하게 한다.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도 헨리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연인을 위해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재연한 비디오를 만들었고, 루시는 일기를 써서 스스로 기억의 단서를 남겼다.

우리가 기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속에 우리의 생생한 생각과 감정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루시처럼 첫 키스의 경험을 매번 되풀이하는 ‘행운의 기억상실증’에 걸리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감정에 집중하고 기억을 붙잡기 위한 노력을 하다보면 50번째, 100번째 키스도 첫 키스처럼 황홀하게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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