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는 반말? 존댓말?
어린이에게는 반말? 존댓말?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4.2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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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린이에게 반말과 존댓말 중 어떤 말을 사용하십니까. 그리고 이 물음의 정답은 무엇일까요.

지난해 해외 다큐멘터리 <그레타 툰베리>가 국내에 방영되며 특이한 논란이 있었다. 출연 당시 청소년이었던 세계적인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성인 전문가에게 하는 말이 모두 존댓말로 번역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인들이 툰베리에게 건네는 말은 전부 반말로 번역됐다. 어른은 반말, 아이는 존댓말.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이 번역은 유엔 연설에서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느냐”(How dare you?)며 당당하게 성인들을 꾸짖던 툰베리의 캐릭터와 상반되어 어색하게 보였고, 이와 관련한 논란은 우리의 언어습관을 돌아보게 했다.

영어에는 없는 한국어의 문법적 특징, ‘존비법’(상대를 높이거나 낮추어 말하는 법)은 매우 복잡하다. 말을 할 때마다 듣는 사람과 나의 높낮이를 따져 보아야 하고, 상대방을 이름보다 직위와 직책으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다. 반말을 쓰는 관계에서도 서로의 이름이 아닌 ‘언니’, ‘형’, ‘선배’ 등 친밀하지만 위아래를 구분하는 호칭을 사용한다. 어딜 가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나뉘고, 누가 새로 등장하면 ‘족보’부터 정리해야 한다.

복잡한 존비법을 단순화하려는 시도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 ‘상호 존대’다. 이 경우는 우리에게 익숙한 편이다. CJ 그룹은 20여 년 전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며 국내 최초로 ‘님’ 호칭을 도입했다. 이런 시도는 지금까지 이어져 말단 사원도 이재현 CJ 회장을 ‘이재현 님’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다른 기업들도 이를 벤치마킹해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거나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둘째, 모두가 ‘예의 있는 반말’로 대화할 수도 있다. 회사에서는 사원이 차장에게 “컨펌 부탁해”, 죄송하다는 말 대신 “미안해”라고 말하고, 학교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이름으로 부르며 친구처럼 말을 거는 것이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출판사인 민음사 문학2팀은 『릿터』 34호를 준비하는 3개월 동안 팀 내에서 직급과 나이에 상관없이 ‘예의 있는 반말’을 사용하는 실험을 했고, 이화여대 병설 미디어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이윤승 교사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여러분이 반말해 주면 저도 반말할게요”라고 말한다.

‘상호 존대’와 ‘예의 있는 반말’ 둘 다 우리 머릿속에서 ‘높낮이’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사람들끼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말단 사원이 회장을 팀원 부르듯 부르고, 심지어 학생이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는 상황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 교사의 ‘상호 반말’은 학생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동료 교사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책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 김소영은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매일 만나는 어린이들과 서로 존대를 하자니 친해지기가 어려울 것 같았고, 서로 반말을 하자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는 고민 끝에 결국 자신은 반말을 쓰고, 어린이는 존댓말을 쓰는 일반적인 관계를 선택했다. 하지만 낯선 어린이에게는 꼭 존댓말로 말을 건다. 어린이를 더 존중하고 싶어서다. 그렇다면 그는 낯선 어린이들은 존중하고, 독서 교실 어린이들은 존중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특별판 표지. ​​​특별판의 인세는 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된다. 

어린이들에게 어떤 말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뿌리 깊은 언어의 관습이 있을뿐더러, 관계의 성격은 반말/존댓말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의 반말과 아이의 존댓말로 이루어진 익숙한 그림에 의문을 품는 일, 낯선 어린이를 만나면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런 물음과 고민은 어린이를 동등한 존재로 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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