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심용환 “오늘날 탐독해야 할 김영삼과 김대중”
[명사에게 듣다] 심용환 “오늘날 탐독해야 할 김영삼과 김대중”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4.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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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더의 상상력』은 김영삼과 김대중 두 인물의 삶을 다룬 역사서다. 그들이 청년 정치인으로 입문한 시기부터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까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책에서 그들은 각자의 투철한 신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 토대는 3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 기틀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공직자 재산 공개나 북한에 대한 평화적 태도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상상력의 결과다. 책은 단순히 김영삼과 김대중을 띄워 위인의 반열에 올려놓는 게 아니라, 이들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심용환. 그간 KBS ‘역사저널 그날’, MBC ‘타박타박 세계사’, tvN ‘사피엔스스튜디오 역사읽어드립니다’ 등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역사적 지식을 소개했던 인물이다. 사람들이 잘 몰랐던 역사적 지식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식으로 여기고 있던 역사적 사건도 색다른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게 그의 특징이다. 그는 역사학자의 역할을 “과거라는 광대한 바다에서 현재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서 떠드는 이야기꾼”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두 대통령에게 우리는 어떤 리더십을 배울 수 있을까. 대선은 끝났지만, 이 책을 들여다볼 만한 이유는 여전히 존재한다. 당선자의 득표율이 2위 후보와 0.7%밖에 나지 않는 상황. 젠더, 계급, 세대 등 다방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난 18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에 그를 찾아가 책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래는 일문일답.

심용환 작가 [사진=최현식 PD]
심용환 작가 [사진=최현식 PD]

Q. 책 제목이 ‘리더의 상상력’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리더에 관한 책 중에 ‘리더’와 ‘상상력’을 연관 지어 내놓은 책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책 제목엔 어떤 의미가 있나.

“5년 전, 『헌법의 상상력』이라는 책을 쓴 적 있다. 우리나라가 탄핵 국면이었던 당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1945년부터 1987년까지 헌법에 관한 역사를 다뤘다. 이 책을 쓰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는 또 어떤 상상력이 필요할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결국, 새로운 제도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필요한 리더상을 제시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7년 이후에는 대한민국 현실에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위상이 큰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집중적으로 탐구해보고자 했다.”

Q. 책은 지난 1월 출간됐는데, 정치적 관심이 한 창일 때였다. 책 집필은 언제부터 시작했고 언제 끝났나.

“내용을 기획하고 집필을 마치는 데까지 2~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Q. 책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대한민국 대통령들 중에서도 ‘양김’을 고른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그들은 나의 10~20대 때 대통령이었다. 김영삼은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김대중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사회 초년생까지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나의 세계관이 완성되고 난 다음에 만난 사람들이 아니라, 정치에 아직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시기에 말로만 들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들을 진짜 알고 있는 게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대사가들을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보통 40년 전에 대해 연구한다. 물론 ‘양김’이 대통령이 된 걸로 따지면 40년까지는 안 됐지만, 이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40년이 넘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이제 현대사가들이 다룰 만한 때가 됐다고 봤다.

또 우리 사회에는 불건전한 담론이 하나 있다. 이른바 이승만과 박정희에 관한 담론인데, 김대중-노무현 정권 들어서면서 일부 보수 진영에서 이들을 위인화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들을 현실정치로 활용하는 게 옳으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러한 담론을 해체해 보고 싶었다. 다만, 그에 대한 반론이나 반박은 이미 많이 나왔으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았다. 과연 그게 뭘까, 생각해보니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소재가 다가왔다. 솔직히 나는 이승만과 박정희는 아주 냉정하게 얘기하면 ‘우리랑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옛날이다. 금융실명의 시대, 남북관계와 국제외교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대, 우리가 탐독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김영삼과 김대중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었다.”

Q. 왜 김영삼과 김대중인지 좀 더 설명해 준다면.

“김영삼과 김대중은 민주화 운동의 양대 축으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역할들을 많이 했다. 우선, 김영삼은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과거 청산의 모델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조선 총독부 청사 철거 사건을 보면, 그것은 결국 우리의 독립운동사와 민주화 운동사가 우리 역사의 전통임을 천명한 것이다. 4.19를 혁명이라고 부르고, 5.16을 쿠데타라고 칭하며,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했던 건 김영삼 정부의 역할이 컸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기에는 군부 정권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던 정경유착이 해소되고, 미국식 기업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단순하게 유명한 대통령이라고 말하기보다, 사실 그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조를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Q. 앞서 말한 대로 김영삼 대통령은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했다. 군내 사조직 하나회 해체와 공직자 재산 공개 등도 김영삼 시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과 실행 능력은 지금 봐도 놀랍다.

“일단 하나는 그 사람의 고유한 정치력 때문이다. 사실 어떤 주장은 좋은 주장인데 논의를 거치면서 지지부진해지는, 소위 누더기 법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칼을 뽑아서 확 휘둘러야 하는데 안 휘둘러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이런 현상의 원리를 정확히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아주 비밀리에 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려면 끝까지 밀어 붙여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보인다. 시작하겠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발휘했던 집중력이 효과를 거뒀다.

어찌 보면 김영삼의 이런 태도가 고집스럽거나 독선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텐데, 오히려 시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두 번째 이유, 즉 김영삼이 당대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기간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국민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면서도 그 정책들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니 독단적이라는 이야기를 안 듣게 되는 것이다.”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김영삼의 리더십이 지금 이 시대가 바라는 리더십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 같다. 책에 적어둔 것처럼 ‘혼자서 무슨 참 결심을 잘하는’ 대통령은 독선적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김영삼이 모든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한 건 아니다. 하나회 숙청, 역사 바로 세우기, 금융실명제 등은 공개적으로 하면 성공할 수 없었다. 특히 금융실명제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도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었다.”

Q.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안정적인 정치인으로 묘사된다. “김영삼의 개혁에 비해 인상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안정적이고 효과적이었으며, 장기적이었다”고 평했는데, 주로 어떤 정책에서 이런 면모가 드러날까.

“가장 컸던 것이 외교와 경제다. 먼저 외교부터 얘기하면 햇볕 정책을 들 수 있다. 물론 햇볕 정책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지만, 그것 말고 다른 대안이 현재 있을까. 현재 북핵 문제가 현실화돼 있고, 일본에는 혐한 현상이 만연하며, 미중 갈등이 날로 더해지는 상황 속에 북한과 화해 협력으로 나아가는 길 외의 대안은 생각해보기 어렵다. 거기에 더해 김대중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주변 강대국을 끌어들여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분단 문제 해결이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냐는 논리를 주장하며 강대국들이 외면할 수 없게 했다. 평화의 논리는 강대국들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논리다. 한반도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해서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를 없애자는 명분이 좋으니, 그들이 국제정세와 이해관계에 대해 주판을 튕길 수는 있어도, 그 명분을 부정하기는 불가능했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발언했던 부시 대통령도 결국에는 마지막에 햇볕 정책으로 돌아섰다. 우리는 햇볕 정책을 남북관계 개선으로만 기억하지만, 따지고 보면 강자들 속에서 약한 나라가 생존하는 방법을 익혔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Q. 다른 하나인 경제 부문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정부가 개입해 금융시장의 인사와 자금 배분에 개입하는 형태) 등 한국 사회의 악습을 끊어냈다는 데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금융권이 정부나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출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물론 여전히 재벌 체제가 자리하고 있지만, NC소프트나 카카오 같은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이 재벌과 경쟁하는 구조가 되면서 재벌 기업의 문화도 바뀌었다. 외환위기를 단순하게 극복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게 성장 배경을 만든 거다. 다만, 김대중 정부는 사회가 점점 신자유주의 체제가 되면서 노동자들의 처우가 취약해지는 부분은 노사정위원회나 4대보험 등의 노동자 입장 대변 기구를 조성하고 사회복지 체제를 강화하면서 대처하려 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

Q.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논리적으로 너무 완벽하고 또 그 완벽성에 대해 자부심과 확신이 강해 다른 사람들에게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평했다. 그는 굉장히 똑똑했지만, 도리어 인간적인 매력은 덜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은 한 색깔밖에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탁월한 정치 감각을 가졌던 김영삼은 특유의 친화력을 가지고 자기 주변에 사람을 만들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 이회창 등이 김영삼이 데려왔던 인물들이다. 또 말은 잘 못해도 기억에 남는 말을 잘 한다. 대표적인 어록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나 ‘내가 죽으면 유신 체제도 무너진다’ 등이다. 이런 게 그 사람의 힘이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정말 학자형 정치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오랜 기간 가택 연금과 교도소 생활을 할 적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다. 그의 자서전을 보더라도 플라톤부터 아리스토텔레스, 도스토옙스키와 알베르 카뮈 등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지적 체계를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지적 역량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사회적으로 존경은 받지만, 김대중적(的) 가치를 구현하는 전라도 정치인은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게 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이게 장단점이라기보다는 나는 각자의 가치라고 말해두고 싶다. 반대로 얘기하면 다른 정치인들은 그만큼 공부를 안 했다는 얘기도 되니까. 너무 단점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는 어떤 리더일까.

“다원주의 시대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활동했던 당대에는 민주화의 열기가 강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요구가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시장이 복잡해지고, 젠더 이슈가 부상하는 등 문제가 복잡해졌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통치자의 의지로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지금의 다원주의적인 환경을 이해하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활약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서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덕목이 조금 섞일 필요가 있다.”

Q. 김영삼과 김대중 외에 재조명 받았으면 하는 대통령이 있나.

“노태우 대통령이다. 그를 다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노태우 정부의 토지공개념에 대해 말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집값 문제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 쪽은 세계화 정책을 하느라고 부동산을 풀어줬고, 다른 한쪽은 외환위기 극복하느라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었다. 그에 비해 노태우 대통령 때는 주택 공급을 늘리되 토지공개념을 통해 부동산 규제를 강화하면서 형평성을 맞추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정권에서 계승이 안 됐다. 노태우 정부가 부동산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장기적으로 접근했던 점은 우리가 재평가해봐도 되지 않을까.”

Q. 글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무엇이었나.

“정치적인 편향성을 많이 없애려고 했다. 이 책은 내가 이 쪽 정당을 좋아해서 또는 응원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고, 어느 편에 있는 독자라도 수용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김영삼과 김대중 각각의 분량도 5:5로, 쪽수까지 다 맞췄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는 면이 있는데 일부러 많이 뺀 것도 있다. 이미 존경하는 사람을 더 써주면 감정적이 되잖나. 그래서 공과에 대한 감정적 평가는 김영삼 대통령보다 김대중 대통령을 조금 더 박하게 한 것도 있다.”

Q. 차기 작은 어떤 상상력인가.

“한 5년 뒤 나올 예정이다. 바로 ‘공동체의 상상력’이다. 역사서보다는 사회과학 분야의 책이 될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지성인의 입장에서 통찰을 담은 책이 될 것 같은데, 2003년부터 현재까지의 사회적 화두들을 다뤄볼 생각이다. 부동산 문제, 노동 문제, 젠더 문제, 인권 문제, 그리고 교육의 문제 등 까다로운 얘기들을 역사적이고 사회과학적인 시선으로 분석해서 지금 현실에 더욱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쓰고 싶다.”

Q. 이 책과 관련해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 있을까.

“김영삼과 김대중 두 분의 자서전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둘 다 재밌다. 김영삼 대통령은 직설적이다. 책의 절반이 박정희 욕이고, 나머지 중 절반이 전두환 욕이고, 다른 나머지가 김대중 욕이다. 그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훨씬 더 차분하게 역사를 서술하긴 하지만, 결국 둘 다 내가 역사를 바꿨다고 생각하는데 꽤 재밌다. 나는 평소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많이 권한다. 그렇다고 너무 악의적으로 쓴 건 말고. 자서전을 보다 보면 그 사람의 편견과 역사 왜곡도 들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보여준 궤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걸 보고 싸웠구나, 또 저 사람은 저걸 견디면서 싸웠구나 하는 게 드러난다. 독자들이 이 책과 함께 읽어보면서 한국 현대사를 즐기는 시간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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