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보석상
최고의 보석상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2.03.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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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어려서 읽은 한 권의 책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 효용성을 지닌 책을 처음 대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유관순 누나』라는 책에 의해서다. 어머니께서 한복 바느질감을 이웃 동네 갖다 주며 동생을 잘 돌보면 책을 사주겠다고 했다. 어머닌 약속대로 바느질삯을 받아 책을 사온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참으로 깊은 감흥을 받았다. 유관순 누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꿈마저 지닐 정도였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이때 책읽기에 흥미를 느낀 필자는 어머니께 졸라서 ‘세계 명작’을 구해달라고 하여 탐독했다.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 작 『사랑의 학교』를 비롯 마크 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 조지 오웰이 지은 『동물 농장』, 진 웹스터가 저술한 『키다리 아저씨』, 토머스 불핀치의 『아서왕 이야기』 등이었다.
 
당시 책벌레인 필자를 두고 주위에선 애늙은이로 통하기도 했다. 여느 아이들보다 정신적으로 매우 조숙했었는가보다. 뿐만 아니라 독서를 통하여 체득한 논리적 사고력, 풍부한 어휘력 및 감수성은 공부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오늘날 문학을 할 수 있는 역량도 어려서부터 습관화 된 독서 덕분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틈만 나면 책과 마주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자연 책에 대한 애정이 깊다보니 서재 곳곳에 책 보따리가 놓여있다. 많은 책들로 서재가 넘쳐나 미처 책꽂이에 정리하지 못한 탓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서재 정리를 하였다. 그동안 문학 활동을 하며 글이 발표된 문예지들이 책장마다 어지럽게 꽂힌 게 눈에 띄었다. 이 책들을 책장 한 곳에 모으며 새삼 그 량을 헤아려봤다. 문단에 입문 한지 27년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뀔 세월 속에 써 온 글들이 각종 문예지에 발표됐다. 그 책이 무려 수백 권이 넘는다.
 
그 책들을 손에 들고 페이지를 넘기노라니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한편으론 책 장 속에 활자화 된 필자의 수필 작품들이 마치 영롱한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사실 글 한 편 쓰기가 얼마나 힘든가. 흔히 글 창작의 고통을 일러 피를 말리는 작업이라고 하잖은가. 수필문학인 경우, 단순한 기록이 아닌 작가가 천착(穿鑿)한 삶에 문향의 옷을 입힌 글이 아니던가. 이런 수필 작품을 그동안 신문 지상 및 문예지에 발표한 글들만 하여도 어림잡아 수 천 편이 넘는다. 저서도 5권을 발간하는 문학적 성취도 이뤘다. 과산(過産) 급에 속한다고나 할까.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고 했던가. 그동안 발표된 글들을 책 속에서 대하자 오로지 글쓰기에 몰입했던 지난날인 듯하다. 문학을 향한 뜨겁게 불타올랐던 마음의 불꽃을 담아낸 많은 책이다. 이 책들을 한 자리에 고이 모시자(?) 갑자기 자긍심마저 생긴다.

옛말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 말처럼 서재에 꽂힌 수많은 문예지를 비롯, 저서, 신문에 수록된 나의 글이 제 빛이 휘발(揮發)되지 말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지녀본다. 적으나마 한 편의 글이 사회적 탁류를 정화 시키고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준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평소 우매함에 갇히거나, 혹은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눈빛이 흐려질 때마다 한 권의 책 속에서 진리를 얻고 지혜를 깨우치곤 하였다. 또한 책을 노로 삼아 험난한 인생 바다를 힘껏 저어갈 수 있는 저력(底力)과 따뜻한 위안을 받기도 했다.

세상엔 진귀한 보석들이 참으로 많다. 다이아몬드, 루비, 에머랄드, 토파즈 등이 있다. 보석이 얼마나 귀하면 영국 왕의 전속 보석상까지 생겼을까. 1904년 최초의 손목시계를 만든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까르띠에가 그 보석상이다. 이는 무려 169년이라는 역사를 자랑한다. 창업자 루이 프랑수아 카르티 손자의 친구인 비행기 파일럿이 비행 중에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자 손자 까르띠에는 친구를 위하여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시계를 고안해 낸 보석상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조종사 이름을 딴 ‘산토스 듀몽(Santos-Dumont)’이라는 시계는 요즘도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필자 서재엔 수 천 권의 책이 진열 돼 있다. 그 책들을 바라볼수록 마음이 든든하다. 서재야 말로 가난한 마음을 부자로 만드는 영험한 힘을 지녔다면 지나칠까. 이때마다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의 왕관을 만들어준 까르띠에 보석상이 결코 부럽지 않다. 서재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이 오롯이 지혜, 상식, 교양, 지식 등을 보석처럼 품고 있어서다. 이 책들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텅 빈 그릇 같았던 허허로운 마음이 한껏 충만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보석의 왕 다이아몬드 역시 세공에 의하여 휘황한 제 빛을 발한다. 사람도 절차탁마(切磋琢磨)에 의하여 인격이 완성된다. 이로보아 온갖 책들이 꽂혀있는 서재는 나를 거듭나게 해주는 마음의 보석상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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