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조금 내려놓으면 새로운 세계가 : SF 소설가 김초엽
취향을 조금 내려놓으면 새로운 세계가 : SF 소설가 김초엽
  • 심완선 SF 전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15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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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F를 좋아해 :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독서신문에서 『우리는 SF를 좋아해』(민음사)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김초엽, 정세랑, 김보영, 듀나, 배명훈, 정소연 등 국내 유명 SF 작가 6인이 인터뷰이로 참여했습니다. 책 내용 중 하이라이트 부분을 공개합니다.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김초엽 작가
김초엽 작가

Q. 그간 여러 상이나 타이틀을 받으셨는데요. ‘올해의 작가’ 같은 거요. 솔직히 자랑스러워하는 타이틀이 있나요? 이건 진짜 기쁘다, 뿌듯하다, 싶은 거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신간알리미 등록’ 기능이 있어요. 그 작가 신간이 나오면 알림을 받는 기능이에요. 제가 신간알리미 등록 1위였어요. 엄청나게 뿌듯한 거예요. 그만큼 누가 날 기다려 준다 싶어서.”

Q. 외부 활동과 글쓰기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강연 등을 집중적으로 겪으면서 경험이 많이 쌓였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재미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강연하면서 들어오는 질문에 답을 잘하면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어서 재미있어요. 사실 질문이 유사한 경우가 많잖아요. 점점 답변이 척척 나오는 기분이에요. 독자분들 만나는 것도 재미있죠. 한 독자님께 마리모 인형을 선물 받은 적이 있어요. 편지를 넣어주셨는데, 마리모가 행운을 선물하는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살아 있는 마리모를 전하면 생명을 소홀히 다루는 기분이라 인형을 사셨다고요. 너무 귀여운 거예요. 그렇게 소소한 좋은 기억들이 있어요.”

Q. 식물 생각을 많이 하셨을 텐데, 다른 인터뷰에서 선인장이 인상 깊었다고 하신 걸 봤어요. 자료를 보면서 이거 진짜 재밌다, 혹은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이 있나요?

“우리는 자아에 집착하잖아요. 나는 하나의 사람이고, 내 안과 밖의 경계를 확고히 하죠. 식물은 인간과 달리 개체성이 불분명해요. 인간도 물론 장내 미생물 등이 있지만, 식물은 정말로 미생물과 곰팡이 등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식물끼리 뿌리로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이루기도 하고, 그냥 잘라서 심으면 새로운 개체가 되기도 하고요. 죽음의 개념도 인간과 달라요. 죽음이 인간만큼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할까요. 애초에 죽어도 다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서 죽기도 하고요. 예전에 아버지가 꽃에 대해 하신 말씀이 있어요. 꽃이 시들면 사람들이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그냥 보내 주고 다시 새로운 화분을 들이는 쪽이 식물의 생활에 맞는 방식이라고요. 식물의 삶을 보다 보면 우리의 사고방식을 다른 방향에서 보게 돼요.”

Q.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주는 작품도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 썼다고 자신하거나, 나밖에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작품이요.

“저는 독자가 많이 읽은 작품이 대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지구 끝의 온실』이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제 스타일이 집약된 책은 『방금 떠나온 세계』예요. 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요. 당분간 단편 안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설정, 세계관, 그에 어울리는 인물들이 제 취향으로 들어가 있고요. 그래서 이 책이 가장 만족스러워요. 완성도 측면에서도 그렇고요.”

Q.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하 「순례자들」)를 보면서 저는 어슐러 K. 르 귄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하 「오멜라스」) 생각을 많이 했어요.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도시 ‘오멜라스’가 있고, 오멜라스의 극단적인 현실을 깨달은 사람들 일부는 결국 오멜라스를 떠납니다. 「순례자들」도 도시에 남을지 떠날지 선택하죠. 관련이 있을까요?

“「순례자들」은 유토피아 세계관의 단편을 모은 앤솔러지 『전쟁은 끝났어요』에 실렸던 글이에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세계관 중 어느 쪽에 속하든 상관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기획자인 김보영 작가님이 유토피아를 골라 주셨어요. 그런데 유토피아 소설은 수가 많지 않고 명작도 드물잖아요. 플롯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유토피아를 다룬 작품이라고 이야기되는 작품 대부분이 사실은 유토피아가 아니고요. 디스토피아가 내재되어 있어요. 「오멜라스」도 유토피아인 줄 알았지만 디스토피아인 세계, 결함 있는 유토피아를 짧은 글로 굉장히 강렬하게 전달하는 이야기고요. 저도 진짜 유토피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는 불가능하겠더라고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붙여서 동전의 양면처럼 써야겠다, 하고 쓴 소설이 「순례자들」입니다.

유토피아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모티브는 「순례자들」 이후로도 계속 사용하고 있어요.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작은 공동체나, 조금 옛날로 거슬러 가면 히피 문화의 유토피아적 공동체 등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소규모 공동체에서는 일시적으로 유토피아가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바깥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더라도 이 작은 공동체에서는 서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가능해 보여요. 하지만 유토피아는 모두 한시적이란 말이에요. 결국 균열이 일어나고 무너져요. 「순례자들」이 제게는 『지구 끝의 온실』로 이어져요. 다른 작품에서도 한시적인 환대를 제공하는 짧은 공동체를 많이 염두에 두고 있어요. 「오멜라스」는 이와 반대로 한 명을 착취하는 오래된 디스토피아죠. 그래도 당연히 겹쳐 읽어 주시리라 생각해요.”

Q. N. K. 제미신의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도 보셨나요? 대놓고 「오멜라스」를 비판하는 단편이잖아요. 「오멜라스」가 아름답고 강렬하긴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고,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은 그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죠. 그래서 「순례자들」을 비롯해 세 편을 같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똑같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이야기인데 각자 도시를 그리는 방법이 다르니까요. 떠난다, 남는다, 싸운다는 차이도 재미있고요.

“실제로 「오멜라스」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매우 숭고하게 나오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떠날 수가 없어요. 현실의 사람들은 떠나서 갈 곳이 없단 말이에요. 어디로 가든 나는 불합리한 구조에 연루되어 있고, 구조를 떠나서 생존할 수 없고, 우리가 구조의 부품이라는 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떠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남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Q. SF를 쓸 때 영향을 받은 작가나 작품이 있나요.

“한국 작가들의 책에 영향을 받았죠. 한국에서 SF를 쓰면서 생기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많이 참고했어요. 예를 들면 등장인물을 다국적으로 설정하면 언어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돼요. 영어 문화권에서 글을 쓰는 분들은 이런 고민을 덜 하겠죠. 하지만 제 앞에서 활동하신 많은 국내 작가들이 레퍼런스를 잔뜩 쌓아 놓으셔서요. 언어 설정 같은 문제를 우회하거나 돌파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그리고 정서적인 면에서는 김보영 작가님이나 정소연 작가님 작품에 영향을 받았어요. 데뷔 직전과 직후쯤 국내 작가 책을 다 읽었어요. ‘이렇게 쓸 수 있구나, 한국 SF는 재미있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덕분에 저의 취향을 알았죠. SF라고 해도 스펙트럼이 넓잖아요. 폭넓게 좋아하는 분도 있겠지만 보통 특정한 계열의 작품을 좋아하죠. 저도 그랬어요. ‘옥타비아 버틀러 소설은 재밌는데 이 작가는 좀 아쉽네.’ 하고요. 버틀러의 『킨』은 너무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는데 다시 읽으니 고통스럽지만은 않고 은근히 유머 감각이 있더라고요. 최근에는 해외 작품이 다양하게 번역 출간이 됐잖아요. 수혜를 입었죠.”

Q. SF도 범위가 넓은데 특정 이미지만 강조되는 측면이 있죠. SF는 별로일 거라고 지레 꺼리는 분들이 계시고요. 초엽 님 소설은 그런 점에서 SF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SF를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SF가 좀 어려운 장르는 맞죠. 진입 장벽이 높아요. 그 장벽을 아무렇지 않게 넘는 분들이 있고, ‘아니다’ 하고 돌아서는 분들이 있고요. 물론 장벽을 낮추는 작품도 많죠. 제 작품도 그런 스타일이고요. 어쨌든 나의 취향을 조금 내려놓으면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거잖아요. 마음의 장벽 너머에 재미있는 작품이 많을 거란 말이에요. 내가 좋아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작품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있죠. 그런 순간이 우리의 세계를 넓혀 주고요. 저는 살면서 그런 순간이 매우 즐거웠기 때문에 독자분들에게도 권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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