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갇혀 사는 모든 종에게
틀에 갇혀 사는 모든 종에게
  • 고지우 대학생 기자
  • 승인 2022.03.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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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앞 바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앞 바다

가두리, 바다에 울타리를 쳐 물고기를 양식하는 공간이다. 어획을 목적으로 가둬지는 물고기들과 달리 돌고래들에게 가두리는 해방을 향한 마지막 단계다. 오랜 시간 인간의 손길이 닿아있던 돌고래가 방류되기 전 야생성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책 『소설 제주』는 제주를 배경으로 한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이 담긴 테마 소설집이다. 다섯 번째 소설인 윤이형 작가의 「가두리」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불법 포획 사건을 모티브로 하며, 지금은 야생으로 돌아간 돌고래 ‘복순’이 등장한다.

‘제돌’을 포함한 열 한 마리의 남방큰돌고래들이 제주 바다에서 포획돼 쇼 도구로 이용된 이 사건은 일명 ‘제돌이’ 사건으로도 불린다. 저자는 제돌이에 가려져 잊혀간 ‘복순’을 기억하고자 한다. 정체성을 거부당하며 살아야 했던 인간 ‘명은’과 돌고래 ‘복순’의 상황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성산읍 신풍리 앞바다. 실제로 복순이 어민의 그물에 걸려 고향을 떠나게 된 장소다. 복순은 돌고래들을 사들여 수족관에 가두고 쇼를 시키는 업체에 1,500만 원의 몸값으로 팔려 갔다. 추정 나이 열한 살에 어른이 되기도 전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충분히 조심하지 않았거나 조심했더라도 길을 잃었을 거라고 얘기한다. 복순이 눈을 떴을 땐 수족관 안이었고, 다복해지라는 의미인 건지 그에겐 ‘복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새롭고 풍요로운 마을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 신풍리. 신풍리의 바다를 줄곧 바라보다 보면 이보다 더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은 없을 것 같다. 바닷속 사정을 모르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그랬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섬 제주도에서 그 이면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이는 없었을 것이다. 혹은 알고 있음에도 외면하려던 것은 아닐까.

명은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부모님의 기대가 쌍둥이 오빠에게만 향해있던 것, 회사에서 희롱을 당하고도 침묵해야 했던 일 전부 그가 가지고 태어난 성별 때문이라는 사실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자신이 돌고래처럼 갇혀 있는 존재라 믿은 명은은 복순이에게 느낀 동질감으로 제주를 찾는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노을해안로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노을해안로

대정읍 노을해안로. 운이 좋으면 돌고래들이 출몰하는 광경을 볼 수 있어 대정읍 앞바다를 찾는 발걸음이 많다. 끝내 함덕 가두리에서 벗어난 복순이 모습을 자주 보였다고 한다. 기형과 우울증으로 야생 방사되지 못했던 그는 제돌이보다 2년 늦게서야 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유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명은은 이 바닷가에 다시 서고 나서야 자신은 돌고래를 가둔 종(種)의 일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해야 하는 일들이 있음을 알았다. 복순을 보기 위해 찾은 대정읍 앞바다에서 명은은 복순을 다시는 만날 수 없기를 바란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야 했던 이 섬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라고. ‘복순’이라는 이름이 아닌 진짜 너로 헤엄치라고.

명은과 복순이 세상에 그들을 맞춰야 했던 것처럼 우리는 진정한 ‘나’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가두리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또, 같은 바다지만 가두리를 두고 어떤 종은 밖으로 떠나고, 어떤 종은 안으로 갇힐 것이다. 해안로를 걸으며 육지와 바다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 가두리라는 작은 세상에서 탈출하는 날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어떻게 그만둘 수 있을까?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일을, 어딘가에 이곳보다 넓고 평화롭고 폭력이 없는 곳, 내가 조금 더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상상하는 일을, 그러기 위해 자꾸만 흔들리는 자신을 믿는 일을.” - 「가두리」 中

[독서신문 고지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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